2016년 5월 31일 화요일

맨해튼의 고깔모자 소녀 [까르멘 마르띤 가이떼]~

맨해튼의 고깔모자 소녀 [까르멘 마르띤 가이떼]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열광의 도가니, 뉴욕 『맨해튼의 고깔모자 소녀』는 작가 자신이 뉴욕에서 생활한 경험을 바탕으로 뉴욕 생활의 긴장감과 매력을 열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현실과 이상,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순진무구한 소녀 사라를 통해 이상과 꿈의 세계를 현실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맨해튼의 고깔모자 소녀』에 등장하는 미스터 울프나 연쇄 살인범으로 지목되는 ‘브룩스 살인마’의 존재는 동화 에 나오는 늑대의 잔혹성을 연상시키며 마지막까지 살벌함과 긴장감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독자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맨해튼의 고깔모자 소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호숫가를 떠가는 작은 종이배처럼 잔잔한 수채화 같은 이미지를 던져준다.

메를랭과 아서 [로베르 웨이스 , 로베르 드 보롱]~

메를랭과 아서 [로베르 웨이스 , 로베르 드 보롱]국내 최초 소개원탁의 기사 제도를 수립하였다는 메를랭의 탄생 설화와 아더 왕의 전설을 다룬 작품이다. 중세 기사도 문학의 원류로 간주될 수 있는 것으로, 로베르 드 보롱(Robert de Boron)과 웨이스(Wace)의 작품에서 발췌하여 재구성하였다.Dunc peri la bele juvente que Arthur aveit grant nurrie et de plusurs terres cuillie (....) Arthur, si la geste ne ment, fud el cors nafrez mortelment; en Avalon se fit porter pur ses plaies mediciner. Encore i est, Bretun l'atendent sicum il dient et entendent.아더가 그 많은 왕국에서 불러 모아 손수 키운 아름다운 젊음이 그곳에서 꽃잎처럼 졌다. (...) 전하는 이야기 거짓 아니리니, 아더 역시 몸에 치명상을 입었고, 그가 좌우에 명하여 자신을 아발론 섬으로 데려가라 하였다. 그곳에 가서 치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모든 브리튼 사람들은 그가 아직도 그곳에 있다고 말하며, 그렇게 믿고, 그를 기다린다.(/ 본문 중에서)

180-180~

180-180우리는 백팔십 백팔십 기럭지 백팔십 폼나는 형과 동생 사실 내가 조금 크지 히히우리는 백팔십 백팔십 아이큐 백팔십 나는 백 너는 팔십 살아 보니 똑같더라 하하십여 년 전 만났을 때 나는 가수 너는 백수 180도 변한 내 동생 예헤헤십년 동안 아프다며 잠적했던 우리 형아 180도 건강해졌네 에 헤헤우리는 백팔십 백팔십 둘이서 백팔십 노래하는 형과 동생 이제부터 웃어보자 (하하하하)백팔십 백팔십 백팔십십여 년 전 만났을 때 나는 가수 너는 백수 백팔십도 변한 내 동생 예 헤에~십년 동안 아프다며 잠적했던 우리 형아 백팔십도 건강해졌네 에헤헤~우리는 백팔십 백팔십 둘이서 백팔십 노래하는 형과 동생 이제부터 웃어보자 이제부터 웃어보자 이제부터 웃어보자 이제부터 웃어보자 아하하하

2016년 5월 30일 월요일

길 없는 길 2 [최인호]~

길 없는 길 2 [최인호]진흙탕 세상을 씻어내릴 맑은 정화수 구한말 한국 불교의 중흥조인 경허선사와 만공선사를 축으로, 1천6백년 동안 꺼지지 않고 이어오는 한국 불교의 장명등과 같은 최인호의 불교소설단순한 불교 구도소설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 시대의 '대장경'이라는 찬사를 받은 최인호 인간주의 문학의 백미!

앨리스의 생활방식 [장은진]~

앨리스의 생활방식 [장은진]305호, 앨리스네 집에선 과연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너무도 ‘문제적’인 전위 실험가, 혼자 놀기의 달인 장은진 극단적 감금과 고립, 그 매혹에 숨겨진 절대적 위험의 세계로 흠뻑 빠져드는 발칙한 훔쳐보기가, 지금 시작된다! 2009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작가 장은진의 첫 번째 장편소설 [앨리스의 생활 방식]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2004년 단편 [키친 실험실]로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한 작가 장은진은 지난해 동명 소설집을 펴내 문단의 주목을 받은, 단연 2009년 최고의 유망주. 장은진이 [앨리스의 생활 방식]에서 이번에는 그녀만의 新사랑법을 제시한다. 실제 이웃이 블로그 이웃만도 못한 사이버 세대, 이 21세기 연애의 새로운 공식이 아주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여기, 절세가인인 한 여자와 그녀의 사랑을 걸고 내기를 벌이는 두 남자가 있다. 그리고 또 이곳에서, 305호 여자 앨리스와 306호 남자 루이스의 치열한 러브 액추얼리 공방전이 펼쳐진다. 나란히 평행선을 달리는 듯 보였던 두 가지 이야기는 그들의 처절한 사랑과 복수가 얽히고설키며 어느 순간 서로 만나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며 폭발한다. 세련된 문장 속에 드리운 극단적 감금과 고립, 그 도발적 언어가 쏟아붓는 네오 나르시시스트의 실험실, 305호. 그곳, 엘리스네 집은 바로 네오 나르시시즘(neo narcissism)이 구현된 공간적 실체다. 자, 이제 우리는 나르시스의 현대적 부활, 앨리스의 세계에 흠뻑 빠져들 준비가 되었다. ‘보지 않고, 만지지 않고, 오직 상상으로 사랑하라!’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 판단은 어디까지나 [앨리스의 생활 방식]의 독자 여러분의 몫이다. 감금 모티프에서 발현된 ‘자기애’와 사이버 세대의 新사랑법 “세상을 향해 나 있는 출구 안쪽에 스스로를 유폐시키고 자학적인 고립과 결여 상태를 감수하며 그 출구를 통해 내다보거나, 쳐다보거나, 훔쳐보거나, 들여다보”(문학평론가 김형중)던 [키친 실험실]의 감금 모티프는 [앨리스의 생활 방식]에서 보다 재미있게 확장되고 증폭되기에 이른다. ‘과연 한 사람이 철저하게 고립된 채 10년을 살아갈 수 있을까?’ [앨리스의 생활 방식]은 이런 질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작가의 대답은? 물론 ‘Yes’다. 빼어난 미모를 지닌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과 선입관 사이에서 방황한다. 아름다운 그녀를 둘러싸고 상반된 성격의 두 남자, P와 K가 내기를 벌인다. 페어플레이 원칙에 입각하여 셋이서 함께 더블데이트를 즐기다가 최종 결정은 1년 후 여자가 내린다는 것. 하지만 정작 여자는 두 남자 중 하나가 아닌 다른 사람을 선택하고, 두 남자는 여자에게 복수를 맹세한다. 비극의 시작인 셈이다. 그들이 아닌 다른 사람, 즉 자기 자신을 선택한 대가치고는 너무 큰 대가를 치르고 만 여자. 그녀는 끔찍한 비극을 가져온 원인을 감금하기에 이른다. 바로 자기 자신을 감금하고 철저하게 변신함으로써 그녀 또한 세상에 복수하겠노라 결심한 것이다. “무모하기도 하고, 도착적이기도 하고, 때론 가엾을 만큼 필사적이기도 한 그 행위는”(문학평론가 김형중) 네오 나르시시스트의 실험이 시작되는 지점인 동시에, “끔찍한 현실과 존재의 비루함을 잠시 잊게 해 주는 환하고 다정한 세계를 제공하는 대신에 그런 희망과 기대를 냉정하게 차단하면서도, 궁극적인 치유와 존재성의 회복을 향한 실현할 수 없는 욕망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장은진 소설”(문학평론가 박진)이 발현되는 또 하나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결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문밖의 세계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교류하는 305호 여자 앨리스. 끝내 본명도, 얼굴도 알 수 없는 익명의 존재인 그녀는 305호 안에서 306호 이웃들을 철저히 조종하고 차례로 굴복시켜 나간다. 작가 장은진은 눈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실제 공간이야말로 편견과 관습에 침윤된 오염 지역이라고 규정한다. 작가는 타인의 강요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감촉할 수 없는 사이버 공간이 더 진실하다고 역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기에 더 진실할 수 있는 공간, 관습이 빚어낸 착시가 없는, 오직 개념으로 소통 가능한 세계, 그곳이 바로 네오 나르시시즘을 고양하는 새로운 세대의 자치령이다. 앨리스의 공간이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는 까닭 역시 실제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이 타인의 강요와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운 청정 지역이기 때문이다. 숫자와 사진으로 인증되는 실제 세계가 숨기는 진정한 내면은 가장된 익명성과 거짓 정체성 안에 숨어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느껴 볼 것을 권한다. 306호 남자 루이스, 민석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름도 나이도 모른 채 앨리스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목소리만으로 그녀를 맘껏 상상하고 사랑하는 민석. 결국 앨리스의 실체를 파악한 유일한 인물은 민석인 셈이다. 어쩌면 작가는 앨리스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보지 않고, 만지지 않고도 서로 사랑하고 상처를 주고받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말이다. “10년 동안 한 번도 문밖을 나온 적이 없대.” “그래도 문은 종종 열 거 아니야.” “정정하지. 한 번도 그 문을 열고 나온 적이 없대.” “말도 안 돼. 몰래 한 번씩은 나오겠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어. 세상에 갈 곳이 얼마나 많은데. 볼 것은 또 얼마나 많고. 나라면 이미 미쳐서 돌아가셨겠다. 목소리나 말하는 건 지극히 정상이던데. 우아하단 느낌까지 들었는걸. 도대체 이유가 뭐래?” (……) “몰라.” “오, 연극적인데. 10년 동안 은둔하며 산 여자라.” “연극적이라니?” “상황이 독특하잖아. 아주 신비롭고 흥미로워. 그래서 건전지 사다 줄 사람이 필요했구나. 연극 무대에 올려도 손색없겠는데.” 수연은 그때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수연에게는 그저 흥미롭기만 한 것 같았다. “당장 희곡이라도 쓸 태세다. 너라면 누가 그렇게 살라면 살 수 있겠냐?” “못 할 것도 없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와 그리고…….” “그리고?” “너 같이 잘생긴 이웃만 있다면.” “농담할 기분 아니야. 난 매일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 같아. 가끔은 아주 불길하다고.”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는데 무슨 힘이 있겠어. 오히려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여자 같은데 뭘. 가엾잖아, 어떻게 10년 동안. 자기가 한 번씩 도와주고 그래.” 지나 또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방금 수연이 매력적인 보이스로 풀어 놓은 이야기처럼 그저 재밌게만 들리는 것이다. 그 집은 내 집이었다. 앞으로 10년 동안 살 수도 있는. (/ pp.108~109) 구멍에서 나온 것은 쇠 파이프였다. 여자는 파이프를 성난 사자처럼 이리저리 쑤시고 휘저었다. 맘껏 휘두르기에 동그란 구멍이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그것을 우편 투입구로 재빨리 옮겨 더욱더 광범위하게 쑤셔 댔다. 나는 얼른 4층 계단으로 올라섰다. 제대로 긁힌 정강이에선 피가 흘러나왔다. 외모 콤플렉스와 고도비만에다 정신병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할 것 같았다. 갑자기 공포가 몰려왔다. 그것은 실체 없는, 보이지 않는 공포였다. (……) 나는 미친 듯 날뛰고 있는 파이프를 향해, 미친 듯 몸을 날렸다. 내가 승리하는 길은 파이프를 뺏는 것뿐이란 생각에 온 힘을 다해 잡아당겼다. 그런데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정녕 여자 몸에서 나올 수 있는 힘이란 말인가. 여자의 악력이 파이프를 통해 그대로 전해졌다. (……) “왜 그따위로 살아요?” 당한 게 분하고 억울해서 일부러 다시 물었다. 그래, 이판사판이었다. “사람을 죽였어.” (/ pp.115~116) 그들은 어리둥절한 듯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다. -나도 아니고, P도 아니면? -다른 사람이 있단 얘기? 어정쩡하다는 게 그 뜻이었어? 말해, 어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맨 끝에 걸린 사진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액자 속 J의 얼굴 위로 그녀의 얼굴이 희미하게 비친다. (/ pp.맞아. 다른 사람. P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분을 참지 못한 얼굴로 문을 걸어 잠그고 와인 잔을 바닥으로 내던진다. 그러고는 이를 악물고 구둣발로 조각들을 자근자근 짓밟는다. 악마의 얼굴이다.(/ pp.149) “꼭 확인해야겠어?” “네.” “왜지?” “살기 위해서요. 누님의 표정을, 눈빛을 볼 수 있다면 말 따위는 필요 없을 거예요.” “내 표정과 눈빛을 볼 수 있었다면 애초에 날 선택하지도 않았겠지. 내가 보여 줄 수 있는 건 목소리뿐이니까.” 여자는 오랫동안 침묵한 뒤 수연이 원하는 말을 꺼냈다. “당신, 어머니를 죽였잖아.” 나도 모르게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틀어막지 않았다면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대신 쇼핑 봉투가 바들거리며 바스락 소리를 냈다. 준비라도 한 듯 여자의 목소리는 침착하고 차가웠다. (/ pp.207~208) K가 죽음을 생각하게 했다면 P는 삶을 생각하게 한다. 그녀의 가슴은 증오로 가득 차 있고 그 증오가 그녀를 살게 한다. 모든 걸 잃었고 모든 걸 빼앗겼지만 누구도 자신만큼은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 그녀는 P를 만난 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자신을 본다. 개미 한 마리 죽일 수 없던 예전의 그녀가 결코 아니다. 혼자가 된 이상 나약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 두려움은 사라졌다. 앞으로는 상처 주지 않기 위한 노력이나 회피는 없을 것이다. 참지 않을 것이며, 배려하지 않을 것이며, 양보하지 않을 것이며, 침묵하지도 않을 것이다. 상처를 줄 것이며, 짓밟을 것이며, 고통을 줄 것이다. 본성이 바뀌면 의식과 가치관도 바뀌고 사고방식과 생활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한꺼번에 많은 걸 잃어버린 사람은 한꺼번에 많은 게 변한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빠른 속도로 진화한다. (……) P의 말처럼 그녀는 마녀다. 마녀는 마녀로 살아가야 한다. 진짜 마녀가 되는 거다. 그녀는 아주 많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그녀는 몸을 잠근다. 누구도 열지 못하고, 침범하지 못하도록. 쓰레기 같은 말도 돌아보면 가치가 있다.(/ pp.217~219) 여자의 고립은 좀 남다른 데가 있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사람들은 대개 사회와 인간을 혐오해 관계 맺기조차 거부한다. 그런데 여자는 이웃과 철저하게 단절한 채 살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이웃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다. 평범한 사람보다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과 손길을 필요로 하고 더 많은 감정 교류와 관계 유지를 필요로 한다. 한마디로 여자는 이웃을 ‘잘 이용’해야만 ‘잘 살 수’있는 사람이다. (/ pp.244~245) 이번에는 여자를 떠올렸다. 여자는 바늘구멍 같은 틈도 보여 주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보여 주지 않은 전체가 곧바로 상상의 공간이 된다. 보여 주지 않기에 내 상상은 확인되지 않는다. 확인되지 않으므로 그 상상은 자가 증식하여 풍선처럼 한없이 부풀어 오른다. (……) 여자는 읽어도 읽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책이다. 어려운 것보다 한없이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에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세헤라자데가 들려주는 이야기 같은 책이다. 다시 읽어도 새로움으로 다가오는 그런 책이다. (……) 여자가 ‘여자’에서 ‘그녀’가 되었다. 갑자기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 pp.269~271) -하루에 2분의 1인치씩 잊어. 그러면 세상에 못 할 일은 없어. 그가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돌아선다. 계단을 한 개씩 밟고 내려갈 때마다 그가 계단 한 개 높이만큼 사라진다. 이제 눈에 보이는 건 볼품없이 찌그러진 306호 현관문뿐이다. 그녀는 그 현관문을 오랫동안 쳐다보다, 웃는다. (……) 그러고는 수화기를 귀에서 떼며 속으로 말한다. 얼굴을 보지 않고 상처 줄 수 있다면 사랑도 할 수 있다고. (/ p.364)

캔디보이-미쳤나봐~

캔디보이-미쳤나봐내가 너를 두고 바람피다니 내가 정말 미쳤었나봐술이 왠수라고 말한다고 해도 넌 절대 이해못하지내가 너를 두고 딴짓하다니 정말로 할 말이 없어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한번만 용서해줘술을 너무 많이 마셔 이성을 잃고 헤맨거야친구때문에 늪에 빠졌어 날 용서해줄 수 있니*내가 미쳤나봐 정말로 미쳤나봐 널 배신하고 말았어그래도 진심이 아니었어 다시는 그런 짓 안할게내가 미쳤나봐 정말로 미쳤나봐 나밖에 모르는 너를아프게 해버렸어 정말 미안하다 용서해줘나만 위해 살던 너를 놔두고 딴 여자 만나버렸어그 다음날 죄책감으로 하루 종일 슬펐어숨기고서 살아갈까 망설이기도 했었지만솔직히 네게 말하는 것이 우리를 위한 것 같아

2016년 5월 29일 일요일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테드 창]~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테드 창]SF사상 보기 드문 정치함과 우아함을 갖춘 작가 테드 창의 휴고 상, 로커스 상 중편 부문 최우수상 수상작!인공지능(AI)을 탑재한 로봇은 SF 속에서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하는 과학 기술의 결정체로 묘사되어 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로봇의 개발이나 인공지능의 사회화 과정에서 발생할 비용들을 고려했을 때, '인공지능 로봇이 굳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든다. 단순히 '편리함'을 위해서라면 기계는 로봇일 필요도, 인공지능일 필요도 없다. 구글 검색 엔진이나 스마트폰의 존재만 보더라도 소프트웨어 역시 인공지능일 필요가 없다. 테드 창은 이처럼 SF 속 인공지능 로봇과 현실 속 기술의 발전 양상에 괴리를 느꼈다.[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그가 느낀 괴리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인공지능의 다른 형태를 제시한 작품이다. 전직 동물원 조련사인 애나는 신생 게임 회사인 블루감마사에 취직한다. 블루감마사는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사교 게임인 [데이터어스]에 가상 애완동물(virtual pet)인 디지언트를 제공하는 회사다. 애나는 백지 상태의 디지언트를 교육시켜, 인간 사회의 언어와 지식, 사회성을 익히도록 훈련하여 '팔릴 만한 상품'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디지언트는 오너의 애정을 갈구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고, 애나는 디지언트를 가르치며 마치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은 애정을 느낀다.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생태계에서 디지언트는 끊임없이 존속의 위협을 받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애나는 디지언트를 지키기 위해 개인적인 희생마저 감수하고자 한다.이 작품을 통해 테드 창은 과학 기술로서가 아니라 수익을 창출하는 상품으로서 인공지능이 맞부딪치게 될 현실적인 문제들과, 인간이 가상 생명체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 대해 치밀하고 빈틈없이 그려냈다. 과작(寡作)의 단편 작가로 널리 알려진 테드 창은, 자신의 작품 중 가장 긴 이 작품으로 2011년 휴고 상과 로커스 상의 중편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이잉 이잉 이잉.” 롤리가 말했다. “씨발.”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롤리를 주목했다. “쟤 어디서 저런 말을 배운 거야?” 마헤시가 말했다.애나는 마이크의 토글스위치를 끄고 롤리를 위로해 주기 위해 아바타를 그쪽으로 보냈다. “글쎄요. 우리 중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들은 게 틀림없어요.”“흠, ‘씨발’이라고 욕하는 디지언트를 판매할 수는 없잖아.”“지금 알아보고 있어요.” 로빈이 말했다. (/ p.27)뉴로블래스트 계열의 디지언트들은 유아기를 지나면 점점 요구 사항이 많아진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들을 개량하면서 블루감마사는 똑똑함과 종순함의 조합을 노렸지만, 디지털판에서조차도 변하지 않는 게놈 특유의 예측 불가능함 탓에 개발자들은 결국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너무 어려운 게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디지언트들이 제공하는 난이도와 보상 사이의 균형은 대다수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수준을 훌쩍 넘었다. 그래서 사용자들은 디지언트를 정지시켰다.(/ pp.51∼52)

진주 (개정판) [존 스타인벡]~

진주 (개정판) [존 스타인벡]그것은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부드러웠다. 마치 진주가 미래의 안락함과 안정을 보장하는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듯 느껴졌다 존 스타인벡의 『진주』는 인간의 숨겨진 본능이라 할 탐욕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를 추적하여 강렬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작품이다. 스타인벡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과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지금 바로 우리들 곁에서 일상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현실’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가장 급박한 상황에서 발견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값비싼 진주. 그것을 빼앗으려는 자와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의 구분되지 않는 탐욕을 통해, 모든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본성과 부끄러운 인간의 자화상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오두막은 태양빛을 받아 서서히 따뜻해졌고 벽의 갈라진 틈들 사이로 가느다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가느다란 빛줄기 중 하나가 코요티토가 누워 있는 요람과 요람을 매달고 있는 밧줄을 비추었다. 그때 어떤 작은 움직임 때문에 그들은 요람을 바라봤다. 순간 키노와 주애너는 얼어붙은 듯 꼼짝할 수 없었다. 지붕의 대들보에 요람을 매달고 있는 밧줄을 타고 전갈 한 마리가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선 악마의 노래, 적의 노래, 가족의 원수들이 부르는 노래, 야만스럽고 은밀하며 위험으로 가득한 가락이 들려왔다. - 본문 15p 중에서 키노는 머리 위에 떠 있는 카누에서 주애너가 기도의 마술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코요티토의 부어오른 어깨를 치료하기 위해 행운이 필요한 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행운을 강제로라도 빼앗기 위해, 신의 손에서 억지로라도 행운을 낚아채기 위해 근육을 잔뜩 긴장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필요성이 절박했으며 그 소원이 간절했기 때문에 오늘 아침 비밀스럽고 소박한 ‘진주를 기원하는 노래’의 가락은 더욱 강하게 울려 퍼졌다. - 본문 35p 중에서 키노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진주를 발견했던 것이다. 진주의 본질과 인간의 본질이 뒤섞이자 기묘한 검은 찌꺼기가 침전되었다.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키노의 진주와 관계를 맺게 되었다. 키노의 진주는 모든 사람들의 꿈이며 사색 그리고 음모와 계획, 미래와 소원, 필요와 탐욕, 갈망이 되었으며 그것을 방해하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키노였다. - 본문 43p 중에서 두 사람은 마치 두 개의 검은 탑을 가져오는 것처럼 보였다. 키노는 팔에 소총을 걸치고 있었고 주애너는 숄을 자루처럼 어깨 너머로 둘러메고 있었다. 그 안에는 조그맣고 흔들거리는 무거운 꾸러미가 들어 있었다. 숄은 말라붙은 피로 뒤덮여 있었고 그 꾸러미는 그녀의 걸음걸이를 따라 조금씩 흔들거렸다. 그녀의 얼굴은 피로와 긴장감으로 인해 잔뜩 굳어 있었고 주름 잡힌 가죽처럼 변해 있었다. 그녀의 크게 뜬 두 눈은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았고 천국처럼 멀리 떨어져 있었다. - 본문 146p 중에서

요리사가 너무 많다 [렉스 스타우트]~

요리사가 너무 많다 [렉스 스타우트]셜록 홈스 이래 가장 매력적인 탐정이 펼치는 본격 오트 퀴진 미스터리 전 세계 미스터리 거장들의 주옥같은 명작을 담은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여섯 번째. 존 딕슨 카의 [화형 법정]과 함께 출간된 [요리사가 너무 많다]는 렉스 스타우트의 대표작으로 개성 넘치는 탐정 콤비, 네로 울프와 아치 굿윈이 휴양지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네로 울프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이자 1938년에 출간된 [요리사가 너무 많다]는 팬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꼽힌다. 이 작품은 네로 울프와 아치 굿윈의 만담 같은 대화,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플롯, 정통 추리 소설에서 볼 수 있는 범인 찾기의 즐거움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요리사가 너무 많으면 접시가 깨진다! ‘네로 울프 시리즈’의 특징은 독특한 캐릭터에 있다. 네로 울프와 아치 굿윈이라는 탐정 콤비는 평범한 플롯을 특별한 것으로 탈바꿈시킨다. 이 환상의 탐정 콤비는 자주 티격태격하며 독자에게 웃음을 주는데, 집 밖으로 나가기 싫어하는 네로 울프가 여행을 떠난다는 익살스러운 상황으로 시작하는 [요리사가 너무 많다]는 울프의 미식가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작품이기에 더욱 즐겁다. [요리사가 너무 많다]에서 네로 울프는 5년에 한 번 열리는 15명의 세계적인 요리장들의 행사에 초대된다. 요리의 거장들이 모이는 만큼 처음 듣는 이름의 특급 요리들이 등장하고 등장인물들은 신나게 먹고 마시며 즐긴다. 주빈으로 초대된 울프 역시 일정 마지막 날에 ‘오트 퀴진에 대한 미국의 기여’라는 연설을 할 예정이다. 맛있는 요리를 맛볼 생각으로 즐거워하던 울프는 요리사 중 한 명의 시체를 발견한다. 모임에 참석한 요리장들은 모두 피해자를 살해할 동기가 있다. 휴가 차 휴양지에 온 네로 울프는 어쩔 수 없이 살인 사건 수사에 관여하게 된다.미국식 하드보일드 + 영국식 정통 탐정 = 환상의 짝꿍네로 울프는 미국을 대표하는 탐정으로 전 세계 미스터리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가 등장하는 작품이 훌륭하고, 조수 아치와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셜록 홈스가 왓슨을 데리고 다니듯이 네로 울프도 굿윈을 데리고 다닌다. 그러나 굿윈의 역할은 탐정 보조에 그치지 않는다. 굿윈은 발로 뛰고 부딪치며 울프가 하지 못하는 일을 처리한다. 사건 수사에 있어 네로 울프가 전통적인 영국 탐정이라면, 아치 굿윈은 미국의 하드보일드 탐정이다. 렉스 스타우트는 미국의 하드보일드 장르와 영국의 탐정 소설을 절묘하게 혼합했다. 네로 울프라는 인물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의 인상적인 캐릭터에 있다. 뉴욕 맨해튼에 거주하는 울프는 키가 180센티미터이고 체중은 약 140킬로그램이다. 허벅지가 두꺼워서 다리를 꼬아 앉을 수 없으며, 자택의 온실로 가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만 한다. 주로 집에서 나가지 않으며 아치 굿윈이 대신 네로 울프의 눈과 발이 되어 집 밖의 모든 일을 담당한다. 네로 울프가 활약하던 시기에 그는 가장 무거운 탐정이었다. 취미는 자택 옥상의 온실에서 난초를 돌보는 것, 맛있는 요리를 먹는 것과 직접 요리하는 것이다. 취미 생활을 위해 아치 굿윈 이외에도 집사 겸 요리사 프리츠 브레너, 난초 관리인 시어도어 호스트먼을 고용하고 있고 몸집 때문에 거동이 어려워 수사를 할 때는 프리랜서를 고용한다. 그러다 보니 생활을 유지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고 따라서 고객에게도 많은 액수를 요구하지만, 그럼에도 네로 울프의 능력이 탁월해 의뢰가 끊이지 않는다. 이렇듯 주인공의 독특한 취미와 거대한 몸집은 이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요리 미스터리의 원형‘요리 미스터리’란 어떤 것일까? 사람이 먹지 않고 살 수 없는 것처럼 추리 소설과 요리의 관계도 끊을 수 없다. 음식에 독을 넣는 사건을 다룬 작품, 음식 재료가 사람을 죽이는 흉기로 이용되는 작품은 셀 수 없이 많다. ‘요리 미스터리’는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요리’가 줄거리의 핵심이 되는 작품, 두 번째는 요리사(혹은 애호가)가 탐정 역할을 하거나 주인공인 작품이다. 물론 두 가지가 섞인 작품도 포함된다. 미식 탐정 네로 울프가 등장하는 이 작품은 ‘요리 미스터리’의 대표작이다. [요리사가 너무 많다]에서는 요리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요즘 자주 볼 수 있는 ‘맛있는 추리 소설’, 혹은 ‘요리 미스터리’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렉스 스타우트의 공적 이십 대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한 렉스 스타우트는 범죄 소설, 환상 문학, 역사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쓰며 기량을 쌓았다. 1934년 네로 울프가 등장하는 첫 번째 소설 [독사 Fer-de-Lance]를 발표하며 단숨에 인기 작가가 되었다. 이후로 이어진 총 46권의 ‘네로 울프 시리즈’는 미국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으며 스타우트를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1975년에 사망한 네로 울프를 기리며 1979년 우수한 추리 소설에 수여하는 네로 상이 제정되었다. 현재까지 헬렌 매클로이, 로렌스 블록, 리 차일드, 루이즈 페니 등 우수한 추리 작가들이 수상하였다. 미국의 권위 있는 추리 소설 평론지 [암체어 디텍티브 The Armchair Detectives]는 1994년 가을 호에서 독자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가장 좋아하는 추리 소설 작가 All-Time Favorite Mystery Writer’ 순위에서 스타우트는 애거사 크리스티(2위), 코난 도일(3위), 레이먼드 챈들러(4위), 로스 맥도널드(5위)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그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 주인공 Favorite Mystery Series Character’으로는 셜록 홈스가 1위, 그 뒤를 이어 네로 울프가 2위를 차지했다. 2000년에 열린 미국 최대의 미스터리 박람회인 바우처콘에서는 크리스티, 챈들러, 대실 해밋, 도로시 세이어즈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Best Mystery Writer of the Century)’ 후보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여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특별한 프리미엄 같은 것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나온 이 결과는 한국에서의 지명도로만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렉스 스타우트의 위상을 보여 주는 좋은 지표로 삼을 수 있다.수 세기 전에 사람이 살인에 맞서 스스로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극히 쉽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만일 제가 당신을 보호하는 걸 돕는다면, 당신이 저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당신 역시 저를 보호하는 걸 도와야 합니다. 당신 몫을 하지 않는다면 합의에서 제외되는 겁니다. 그러면 당신은 범법자입니다.(/ p.238)인생에 뭐가 있는지 자네는 잘 알고 있어. 인생에는 인간이 있고, 그중에는 우리가 개와 공유하는 품위 있고 지적인 식욕 조절이 있지. 사람은 시체를 먹어 치우건, 황혼에서 새벽까지 언덕가에서 울부짖지 않아. 사람은 잘 조리된 음식을 먹고, 구할 수 있을 때 먹고, 신중하게 먹을 양을 정하지. 그리고 자신의 열정을 현명하고 편리하게 조절해.(/ p.278)예전에 어떤 남자가 삶에 있어 최고로 강렬한 기쁨 중 하나는 눈을 감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떠올리는 거라고 제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눈을 뜨고 여자들을 본다면 더욱 즐겁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자,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가 꿈꾸는 여자들은 모두 아릅답고, 실제로 본 그 어떤 여자보다도 훨씬 아름답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p.343)

2016년 5월 28일 토요일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 (상) [츠지무라 미즈키]~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 (상) [츠지무라 미즈키]제147회 나오키상을 수상하며, 일본 문학의 중심에 우뚝 선 츠지무라 미즈키. 그녀를 있게 한 제31회 메피스토상 수상작이며 충격적인 데뷔작.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5시 53분.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눈이 내리는 어느 겨울날. 수험 준비가 한창인 3학년 2반 학생들은 평소처럼 등교한다. 하지만 그날 학교에 온 사람은 평소에 사이가 좋았던 여덟 사람뿐. 수업 시작종도 울리지 않고 여덟 명 외에는 인기척도 없다. 눈이 많이 와서 휴교가 된 것일까. 돌아가려던 학생들은 학교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창문도 열리지 않고, 심지어는 깨지지도 않는다. 휴대전화는 불통, 그리고 어느 순간 학교 안의 모든 시계가 5시 53분을 가리키며 멈춘다. 혼란에 빠지는 학생들. 갇힌 거나 다름없는 텅 빈 학교 안에서 그들 중 한 사람이 두 달 전에 자살한 급우 이야기를 꺼낸다.그리고 그들은 이내 깨닫는다. 자신들 중 어느 누구도 자살한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과 지금 이곳에 있는 자신들이 원래 7명이어야 한다는 사실을.......[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의 저자 ‘츠지무라 미즈키’는 이 작품으로 제31회 메피스토상을 수상하며 데뷔하게 된다. 그 후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을 수상하며 차세대 일본 유망 작가로 손꼽히게 되던 그녀가 드디어 제147회 나오키상을 수상, 일본 문학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된다.최근 일본의 20,30대 여성 독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작가로 떠오른 ‘츠지무라 미즈키’는 10대들의 심리묘사에 뛰어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작가 특유의 화법으로 풀어내는 10대들의 심리묘사는 데뷔작인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에서 시작되었음을, 이 작품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소설은 여덟 명의 학생들이 차가운 학교에 가면서부터 시작된다. 자살한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채, 그런 여덟 사람의 사연들이 흘러가기 시작하고, 하나씩 사라져간다. 작가 특유의 10대들에 대한 심리묘사는 각 개인에 맞춰 진행되며, 극의 흐름을 이끌어간다. 친구 각 개인에 대한 사연으로 인해 점점 그들에게 동화되어 가고, 그런 초조함 속에서 자살한 친구를 떠올려야 한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진지하지도 않은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사연으로 읽는 동안 작품 속에 독자를 가두어둔다. 그러면서 질문을 던지다. 자살한 친구는 누구인가?갑자기 리카는 관자놀이 부근에 희미한 통증을 느끼고 옆 책상을 짚었다. 책상 위에서 본 액자의 사진. 11월 말, 그 자살이 있고 나서 촬영한 자신들의 사진.가슴속을 답답하게 하는 위화감의 정체, 그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지금 여기 있는 리카의 반 학급위원들. 두 달 전에 열린 축제를 위해 함께 준비했고, 그러는 동안 자연스럽게 사이가 좋아진 멤버.리카는 슬그머니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의 얼굴을 따라 차례차례 시선을 옮겼다.다카노와 아키히코, 스가와라에 미쓰루. 미즈키와 게이코, 시미즈와......, 그리고 리카다. 남녀 4명씩 전부 8명. 평소와 다름없는 멤버다.하지만 왜일까, 어째서일까.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 그래, 아까 본 사진이다. 사카키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그 액자 속, 사카키를 둘러싸고 있던 제자들의 얼굴. 그리고 그것은.......리카는 갑자기 깨닫고 입술을 깨물었다.――한 명 부족했다. 8명이 아니다, 7명밖에 없었다.틀림없이 생각난다. 그때 느낀 위화감. 그 사건 직후에 찍은 사진에, 자신들 중 누군가 한 명이 없었다.(/ p.86)초조해서 진정이 되지 않는다. 입술을 살짝 깨물며 친구들의 얼굴을 살펴보고 다카노는 답답해져서 눈을 찡그렸다. 자신들은 사이좋게 지내오지 않았는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다든지 악의를 느꼈다든지, 그런 피해망상에 빠질 만한 사람이 자신들 중에 있다? 아니면 그 누군가에게 한 심한 행동도 자신이 잊어버렸을 뿐인 것인가.어떻게 해야 할지,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를 몰라 말없이 다카노는 고개를 든다. 그리고 거기서 무심코 놀라 침을 삼켰다. 식당 중앙에 걸려 있는 시계. 그 바늘이 가리키는 시각을 보고 다카노는 아아, 하고 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시계가......, 가고 있어.'6시 32분.그 시각을 가리킨 시곗바늘은 지금 또다시 찰칵하고 1분의 거리를 이동하려는 참이었다.(/ p.303)

박기영-시작~

박기영-시작오직 너만을 생각한 밤이 있었어 내가 정말 왜이러는 건지아무래도 니가 너무 좋아진게 아닐까이게 바로 사랑인가봐내가 기다리던 사람이 바로 너란 걸난 네게 말하고 싶어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모든 것을 네게 주고 싶다고 어떡해야 내마음을 알겠니 니가 나의 전부라는걸나의 맘을 너에게 보여주기가 이렇게도 어려울줄 몰랐어너를 위한 생각에 그렇게 많은 날들이 힘들게만 느껴진거야처음 본순간 나는 느꼈어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 바로 너란걸난 네게 말하고 싶어 너를 사랑하고 잇다고 모든것을 네게 주고 싶다고어떡해야 내 마음을 알겠니 니가 나의 전부라는걸이젠 혼자라고 생각하지마 너를 사랑하는 내가 있잖아네게 말하고 싶어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모든것을 네게 주고싶다고어떡해야 내마음을 알겠니 니가 나의 전부라는걸어떡해야 내 마음을 알겠니 니가 나의 전부라는걸니가 나의 모든거야

불모지대 4 [야마사키 도요코]~

불모지대 4 [야마사키 도요코][삼성]의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은 전 임직원에게[불모지대]를 읽고 레포트를 제출하라는 특별지시를 했다. 그로부터 30여년.... 삼성은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도약하였다. 그당시 밤을 새워가며 [불모지대]를 독파했던 신입사원들은 지금 전세계를 무대로 신명나게 상전(商戰)을 벌였고,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 이 책의 주인공 이키 다다시는 한국의 정·재계 인사와 폭넓은 교류를 해온 인물로서 고 이 병철 회장과 각별한 사이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수출 드라이브 정책과 압축성장 전략 등을자문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올림픽 유치를 조언할 만큼 그는 한·일 현대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초판 발행 이후 일본에서 1억부의 판매기록을 세웠고, 한국에서도 1천만부 이상 팔린 [불모지대]의 매력은 무엇일까? 주인공 이키 다다시는 일본 육사를 수석졸업한 엘리트로서 종전을 맞아 11년간 시베리아에서 지옥의 유형 생활을 했다. 인간 의지의 한계를 체험한 끝에 귀국한 그는 40대 중반에 회사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회사에 군대와 같은 참모조직을 도입하여 세계에서 수집한 정보를 활용, 일개 수출회사를 일본 최대의 종합상사 반열에 올려 놓았다. 정보수집의 귀재로 알려진 그는 67년 중동전쟁이 6일만에 끝난 일, 중공의 베트남 침공, 73년의 오일쇼크의 징조를 읽어 회사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 주었다. 그럼에도 사사로운 이익이나 명예에 집착하지 않고 상사맨으로서의 자존심과 명예를 굳건히 지킴으로써 전문경영인의 위상을 드높혔다. 세계를 무대로 경제전쟁에 뛰어든 기업인은 물론 상사맨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될 필독서이다.

2016년 5월 27일 금요일

바다-Mad~

바다-Mad삐빠삐빠 삐빠뿌빠 뿌빠삐빠삐빠 삐빠뿌빠 뿌빠바다)I'm So MadI'm Mad언터쳐블)You Make Me Crazy!너를 보면 나는 미쳐 미쳐너는 나의 Baby네 옆으로 더 밀착 밀착Drive me crazy 난 M.A.D 매 매 매일이 지루하게 지나가 베일을 벗고 Look at me바다)첫눈에 반해버렸어 온몸이 자꾸 떨려요그대만 쳐다보고 있어 이순간에 일어나는 전기방금(Now)봤지만 내일도 보고(Love) 모레도 보고(Hot) 싶어요심장이 떨려(떨려) 떨려 정말로I'm So Mad Mad 나는 그대에게 빠졌어I'm So Crazy Crazy Mad Mad하염없이 빠져드는 나니까I'm So Sad(So Sick!) Crazy어쩔꺼야 너무 멋져 미쳐Mad Mad Mad I'm So Mad and CrazySad Sad Sad I'm So Sad 그대가 날 원한다면나를 원한다면 그냥 따라 갈래 나를 데려가줘요I'm So Mad삐빠삐빠 삐빠뿌빠 뿌빠누구보다 좀 더 자신있어 마음에 붐이 일어요감정이 주체 안 되는데 싫어하면은 어쩌나난생처음이야(Yoo) 야릇한 느낌(Feel) 부푸는 가슴 (Hot)멋있어심장이 떨려(떨려) 떨려 정말로I'm So Mad Mad 나는 그대에게 빠졌어I'm So Crazy Crazy Mad Mad하염없이 빠져드는 나니까I'm So Sad(So Sick!) Crazy어쩔꺼야 너무 멋져 미쳐!Mad Mad Mad I'm So Mad and CrazySad Sad Sad I'm So Sad 그대가 날 원한다면나를 원한다면 그냥 따라갈래 나를 데려가줘요I'm So Mad삐빠삐빠 삐빠뿌빠 뿌빠1 2 3 (Eventually)1 2 31 2 3 (Eventually)1 2 3 I'm So Mad숨을 참고 돌아보지 말고 나를 쳐다봐그대가 있어 내가 있어 천국을 향해 누워사뿐 안고서 그냥 평생 있어 준다면소원이 없을거야 My HeavenlyI'm So Mad Mad 나는 그대에게 빠졌어I'm So Crazy Crazy Mad Mad하염없이 빠져드는 나니까I'm So Sad(So Sick!) Crazy어쩔꺼야 너무 멋져 미쳐Mad Mad Mad I'm So Mad and CrazySad Sad Sad I'm So Sad 그대가 날 원한다면나를 원한다면 그냥 따라 갈래 나를 데려가줘요I'm So Mad

마루-Loving You~

마루-Loving Youloving you 내게와줘어제처럼 애쓰며 웃지말고그냥 내품으로 다가와내가 다 알수는 없더라도그 누구보다 더 따뜻하게오늘처럼 민망한감 들지말고그 눈물 머금고 다가와내가 다 알수는 없더라도 니 눈물 웃음속에 넣어줄께수 많은 시간동안 너는 아직 먼 곳만 보고있지그래 나 해줄말 없어도 다 못해도 나 지켜볼께loving you 내게 와줘 아무말도 난 더 필요없어loving you 조금만더내게 니맘을 모두다 담고서 그래 다가와나 끝없이 웃어도 허전하고 머릿속 가득 다 멍한건내가 너에게 그무엇도 되지 못하기 때문이야수많은 시간동안 너는 아직 먼 곳만 보고있지그래 나 해줄말 없어도 다 못해도 나 지켜볼께loving you 내게 와줘아무말도 난 더 필요없어loving you 조금만더 내게 니맘을 모두다 담고서 그래 다가와loving you 내게 와줘아무말도 난 더 필요없어loving you조금만더 내게 니맘을 모두다 담고서 그래 다가와 loving you

마스터피스-Rollercoaster~

마스터피스-RollercoasterRollerCoaster Roller RollerCoaster 위위로 올라가 RollerCoaster RollerCoaster Roller RollerCoaster 밑으로 내려가 RollerCoaster 개구리 올챙이 시절 기억도 못하고 잘난 척을 떨어네가 주인공인 인생은 BlockBuster 그것도 한 순간 like a RollerCoasterhey 내 말 잘 들어 네가 꿈꾸는 막연한 미래는 노력 없인 불투명 그럼 왜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 믿기 싫다면 그냥 고배를 들어 초심 잃은 맘에 파도가 일어 타이타닉처럼 가라앉아 뒤 돌아보니 제자리인생도 한땐 밝게 빛나 Super super hero 중심을 잃은 네겐 깜깜한 숲이나 미로누군가 Trauma에 빠져 정신 못차릴때 누구는 Drama 같은 인생 역전을 하네.만족 대신 열정을 쥐어 Look at me 실패에 부딪치고 배워가 고진감래올라가던가! 아님 내려가던가!Up & Down Up Up & Down Huh.타락의 짜릿함을 느낄때 추락하는 너의 Pride 니 발밑을 기던 자는 정상 위 Surprise희비가 엇갈려승패는 앞뒤가 달러 한 없이 추락하는 자를 밟고 승자는 끝도 없이 내달려너 자꾸 왜이래? 한방을 노리네. 노력 않고 기다리고 있니 어리석은 Pay day마당을 쓸어야 동전을 줍지 그건 세 살짜리 꼬마도 아는 세상의 이치yeah EveryTime ,everyday 난 항상 내 꿈 앞에서 runaway ah~두려워 하지마 Yeah~ 자신을 믿어봐Hands up Hands up 손을 높이 들고 put yo hands up hands up hands up흔들리지마 Yeah

브이 V 2 [A.C. 크리스핀, 케네스 존슨]~

브이 V 2 [A.C. 크리스핀, 케네스 존슨]역대 시리즈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2010년 최대 화제작 채널 CGV를 통해 방영중인 전설의 미드 [V]를 원작으로 읽는다!1986년 국내에서 첫 방송 후 25년 만에 돌아온 '2010 V'. 지난 4월 2일 오후 11시 채널 CGV를 통해 첫 방송한 '2010 V'는 첫 회 시청률 2.33%(이하 AGB닐슨 케이블시청가구)를 기록했다. 이는 국내에 에서 방송된 역대 미드 중 첫 시즌 1회 최고 시청률에 해당한다. '2010 V'는 지난 2009년 미국에서 첫 방송될 당시 1450만 명의 시청자수를 기록, 역대 첫 시즌 1회 기준 전미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었다. 첫 회 주요 시청자 층 역시 30대로 나타났으며 특히 30대 남성의 경우 시청률 2.91%, 점유율 30.3%라는 폭발적인 주목도를 보였다. 30대 여성 역시 시청률 2.97%를 기록했다.'2010 V'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 주요 도시 위에 외계인의 우주선이 나타나며 시작된다. '방문자들(Visitors)'로 불리는 그들은 지구인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며 접근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거대한 음모가 서서히 밝혀지게 된다. 외계인에 맞서는 지구인들의 '승리(Victory)'를 향한 처절한 투쟁을 그린 '2010 V'가 이제 드라마를 뛰어 넘는 생생한 캐릭터와 세밀한 심리묘사로 팬들의 찬사를 받으며 소설로 이어진다. 전 세계 수억 명의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케네스 존슨의 TV 미니시리즈 V!이제까지 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엔딩으로 마침내 지면에서 재탄생했다어느 날 예고도 없이 외계인들이 들이닥치며 50개가 넘는 세계 대도시 상공에 거대한 우주선들이 떠있게 된다. 외계인들은 그들의 행성이 위기에 직면했다는 이야기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며, 인간과 같은 외모와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사람들의 경계심을 풀어놓는 한편 우정과 상호원조의 약속으로 안심을 시킨다. 외계인들은 그렇게 모든 사람을 속이지만, 결국에는 의혹을 품은 사람들과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그들이 겉보기처럼 우호적이지 않음을 암시하는 소름끼치는 사안들을 지적해낸다.과거와 현재를 막론하여 지구의 수많은 압제정권들에서 그리해왔듯, 눈이 어둡고 선전에 홀딱 넘어가버린 대중들은 외계인 정복의 공모자가 되어 포악한 압제자들에 의해 자행되는 잔학행위들을 점차 못 본체 한다. 이제 모든 인류의 미래는 외계인들의 본모습을 아는 소규모의 저항군 전사들에게 맡겨진다.[V]는 긴박감 있게 펼쳐지는 액션, 정치음모, 인상적인 캐릭터들이 어우러진 속도감 넘치는 스릴러이며, [V]가 처음 우리 앞에 등장했을 때 못지않게 오늘날에도 소름끼치는 경각심을 일으킨다. 이 책의 내용과 특징[VⅡ] 케네스 존슨 지음세컨드 제너레이션, 외계인 침략 그 후 20년 ! 서서히 밝혀지는 외계방문자들의 거대한 음모! 인간은 더 이상 외계인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그리고 홀연히 출현한 또 다른 행성의 외계인 군단…….추천글“스릴 넘치고 시사점이 많으며 자동차경주를 보듯 박진감이 느껴지는[V]는 악몽 같이 섬뜩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홀리는 이야기이다.” -[워싱턴포스트]“[V]는 그저 또 한편의 SF가 아니다. 그 자체가 바로 역사의 개작(改作)으로서, 나치의 출현을 경각심 일으키는 과학픽션으로 재현시킨 것이다.[V]는 시청자에게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깨우친다.” -[뉴욕타임스]“지구에서의 삶의 의미를 생각해보게끔 자극하는, SF 최고의 걸작이다.” -[스타 트리뷴]“[V]는 비범할 만큼 흥미진진한 대작이며 시청자들을 아주 인상적이고 마음을 사로잡는 모험 속으로 이끈다.” -[로스앤젤레스 헤럴드 이그재미너]“케네스 존슨은 재미로만 그치지 않는 알차고 사회적 의의가 담긴 작품으로, 상상 가능한 최고의 스릴러를 선사해주었다.” -[TV 가이드]“[V]는 배경과 캐릭터들뿐만 아니라 공포를 아주 현실감 있게 그리며, 특히 십대들의 캐릭터를 공감가게 묘사하면서 배신, 핍박, 단결, 저항이 어우러진 주제를 잘 다루어냈다.” - [빌리지 보이스]“지적이고 상상력이 돋보이는 대히트작 SF 미니시리즈[V]는 아찔하도록 마음을 사로잡는 드라마이다.[V]는 생각을 일깨우는 동시에, 때로는 시청자들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충격을 안겨준다.” - [뉴욕 데일리 뉴스]“케네스 존슨은 마술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이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2016년 5월 26일 목요일

마음 [나쓰메 소세키]~

마음 [나쓰메 소세키]존재의 불안, 구원의 주재라는 내밀한 문제를 긴밀한 구성 안에 녹여낸 이 작품은 도무지 남과 어울리려 하지 않으면서도 유독 '선생님'에게만 일방적으로 다가가는 '나'와 자신을 믿으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라고 태연스럽게 말하는 '선생님'의 관계를 통해 존재에 대한 죄의식으로 고통받는 인간의 초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이 작품은 '행인'에 이은 장편소설로 1914년 4월부터 8월까지 동경과 오사카의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었는데, 당시 에고이즘에 대한 추구와 비판이 매우 철저하게 묘사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른 작품과는 달리 이 책에는 주인공인 '나'가 두 명 등장한다. 주인공의 입을 통해 전개되는 심리묘사가 극히 세밀하고 솔직하다는 의미다. '선생님과 나' '부모님과 나'에 등장하는 주인공 '나'는 순수하면서도 털털한 대학생이다. 반면 '선생님과 유서'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나'는 너무나 순수해서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었던 메이지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젊은 날 자신으로 말미암아 자살한 친구 때문에 후회와 번민을 반복한다. 따라서 주인공이 죽기 직전에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털어놓는 부분은 상당히 무겁고 극적이다. 이 소설에 대한 평가 가운데 특이한 것은 호모 소설, 게이 소설로 보는 시각이다. 이는 일본의 정신병리학자 도이 타케오의 '동성애적 감정'이란 지적에서 출발한 견해들로 가마쿠라 해변에서 만난 선생님에게 젊은 학생인 작중 화자가 끌리는 부분부터 그 냄새가 풍긴다고 지적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이끌림과 그 심리 및 갈등 구조가 압권이다.아버지의 상태는 일주일 동안 변화가 없었다. 나는 그 동안에 규슈에 있는 형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여동생에게는 어머니한테 연락하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이번이 두 사람 앞으로 아버지의 건강에 관해 부치는 마지막 편지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편지에다 다음에 또 무슨 일이 있으면 그땐 전보를 칠 테니 곧바로 달려오라고 일렀다.형은 일 때문에 늘 바빴다. 동생은 임신 중이었다. 그러니 아버지 상태가 당장 어찌 되실 정도가 아닌 이상 곧장 불러들일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정 봐준답시고 천천히 알렸다가 기껏 멀리서 달려왔는데 너무 늦어 아버지의 임종도 보지 못하면 그것도 나중에 원망을 들을 일이다. 나는 전보 내용뿐만 아니라 부치는 시기까지 남모르는 고민을 해야 했다.'며칠 몇 시에 돌아가실 건지는 저로서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언제고 일이 날 수 있다는 것만큼은 알고 계세요.' (/ p.1450

최석준-꽃보다 당신~

최석준-꽃보다 당신그대 가슴에 부는 꽃바람 나는 나는 나는 알았네 해맑은 눈동자 따스한 입술 그대 진실 나는 알았네 하늘의 저 별을 딸 수 있다면 한올 한올 엮어서 당신께 달아주고 꽃보다 아름다운 별보다 아름다운 당신만을 사랑할 거야 그대 가슴에 부는 꽃바람이 나는 나는 나는 알았네 해맑은 눈동자 따스한 입술 그대 진실 나는 알았네 하늘의 저 별을 딸 수 있다면 한올 한올 엮어서 당신께 달아주고 꽃보다 아름다운 별보다 아름다운 당신만을 사랑할 거야 하늘의 저 별을 딸 수 있다면 한올 한올 엮어서 당신께 달아주고 꽃보다 아름다운 별보다 아름다운 당신만을 사랑할 거야

보스 2 [김랑]~

보스 2 [김랑]대두목의 저자 김랑, 그가 다시 쓰는 남자의 세계.아무도 이해하지 마라. 누군가의 이해를 바랐다면, 처음부터 태어나지도 않았다.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그리지 않겠다는 작가. 김랑이 집필 초기에 포기해 버렸던 소설, 그리고 3년의 공백.정혁이 할아버지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시흥 동네 골목으로 차를 몰아가고 있었다. 골목 양옆으로 빽빽하게 주차된 차들 때문에 도로에서의 운전과는 다르게 빠르게 달릴 수가 없었다. 속력을 줄이도록 유도하기 위해 5미터 간격으로 만들어 놓은 시멘트 턱도 운전을 짜증나게 만들었다. 초등학교가 인접해 있는 탓인지 다른 골목보다 턱이 유달리 많았다.시흥 말미에 자리를 잡은 지 20년이 넘었고 어릴 때부터 나고 자랐던 동네라 낯설지 않고 익숙한 것은 좋았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집들과 자동차 때문에 동네가 하루가 다르게 갑갑해 보이고 좁아져서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정혁이 막 우회전을 해서 한 이백 미터만 더 가면 집이 나오겠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저만치 긴 치마를 입은 여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어느 집 창문을 보고 있는 것인지 가로등을 보고 있는 것인지 가로등에 붙은 사원모집 광고지를 보고 있는 것인지는 알수 없었지만 여하튼 여자가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정혁은 여자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의무적으로 클랙슨 한 번 눌러 곧 차가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여자는 정혁의 차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건지 클랙슨 소리를 듣고도 모른 척하는 것인지 계속 고개를 치켜든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p.136~137)

2016년 5월 25일 수요일

슈퍼주니어-돈 돈!~

슈퍼주니어-돈 돈!이대로 끝이면 기회가 없다면모두가 틀렸다고 말하고있어코메디 같은 세상에 웃지 못할 사람들 넌더리가나돈돈 모든게 돈세상 원안에 갇힌너 what is your mindYou autta control what is your mind제발 주위를 돌아봐 절망의 눈빛이 보이잖아Stop bangin my head my eyes gone red점점 멀어지는걸 그대로 충분한 세상이미 가진걸로 다 기쁜세상꿈꾸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버려도 변하지 않네The world is mine내가 이 세계의 법이야 그들이 행복하기 만을 기다렸을때어느 누구보다 먼저 기회를 잡은 것일뿐 약자를 위한 배려따윈 절대없어나의 불꽃을 다 태워서라도 포기할수 없어저들의 것이 아닌 우리 아이들의 세상을 위해서라면그래도 너무 원망하지마 내가아냐 세상이 널그렇게 만든거야내가 원했던건 나는 모두 가져세상이 나를 외면 하여도 눈과 귀를 막고 어지럽게 만들어버릴 적당한 머리와 돈이 조금 필요할 뿐나의 불꽃을 다 태워서라도 지켜주고싶어환돈의 시대끝에 살아가야할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돈돈 모든게 돈 세상 원안에 갇힌너 What is your mindYou autta control what is your mind 제발 주위를 돌아봐 절망의 눈빛이 보이잖아 Stop bangin my head my eyes gone red돈돈 이젠 그만좀해 위선의 가면도 벗어버려벗어버려 니 가식의 가면도 모두가 기다리고있어 마지막 바램도 버리지마 던져버려 니 가식의 가면도Super Junior

마야-너만보여~

마야-너만보여왜 너만 보이는지 바보처럼 가슴엔 니생각 하나로 가득하고눈을 감아봐도 너를 지우려 애써도 내겐 오직 너뿐인걸사랑하는 맘이 깊어질수록 눈물이 더 많아 지네요눈을 뜨면 니가 사라질까봐 그냥 두려워만 했었어미안하다는 말도 고맙다는 그말도 할수가없는데 너라서 다행이야 널 만나서 니가 남겨준 사랑에 나 아파도살며시 내게 다가와 날 살게해준 사람 그사람 바로 너란걸 사랑하는 맘이 깊어질수록 더 많이 힘들어지네요자신이 없어서 널 볼수없어서 눈을 감아봐도 왜 너만 보이는지 바보처럼 가슴엔 니생각 하나로 가득하고눈을 감아봐도 너를 지우려애써도 내겐 오직 너뿐인걸 항상 곁에 있어준 너에게 사랑 한다는 말 하지 못하고 언제나 널 힘들게만 했었던 나에게 웃어주던 고마운 사람 너라서 다행이야 널 만나서 니가 남겨준 사랑에 나 아파도살며시 내게 다가와 날 살게해준 사람 그사람 바로 너란걸왜 너만 보이는지 바보처럼 가슴엔 니생각 하나로 가득하고눈을 감아봐도 너를 지우려애써도 내겐 오직 너뿐인걸너만보여

구운몽 [전영진 엮음]~

구운몽 [전영진 엮음]은 우리 고전 읽기를 통해 문학작품 속에 담긴 옛사람들의 생각과 생활모습을 오늘을 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되었다. 특히 원전이 필요한 작품은 원전까지 수록, 고전 읽기의 참맛을 느끼도록 배려했다. 고전은 대하기 두려운 것이 아리라 우리가 꼭 읽어야 할 가치 있는 우리 문학작품임을 일깨우는 데 주력하면서, 단순히 한번 읽고 끝나는 게 아니라 각 작품을 이해하고 비판하는 힘을 기를 수 있게 했다. 고전을 읽다 보면 우리 선조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또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고전 속에 담긴 지혜를 깨우쳐 미래를 준비하는 초석으로 삼기를 바랍니다.

현인-신라의 달밤~

현인-신라의 달밤아 신라의 밤이여불국사의 종소리 들리어 온다지나가는 나그네야 걸음을 멈추어라고요한 달빛어린 금옥산 기슭에서노래를 불러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아 신라의 밤이여아름다운 궁녀들 그리웁구나대궐 뒤의 숲속에서 사랑을 맺었던가님들의 치마 소리 귓 속에 들으면서노래를 불러보자 신라의 옛 노래를

2016년 5월 24일 화요일

THE S#ARP-Tell Me, Tell Me~

THE S#ARP-Tell Me, Tell MeTell me, Tell me, Tell me, Tell me - You love me아니야 아니야 넌 늦었어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 Say good bye아니야 아니야 너를 지울래 ha 정말 니가 내게 이러면 안 돼지오락가락 그녀와 날 오가다니너는 내 목소리 그녀인줄 알고 다정하게 전화 받았던 거야 아니 이럴 수가 내게 한말과 똑같아농담석인 얘기까지 모두 언제부터야 이럴 수 있니이런 널 믿기를 바라니너와 이별을 작별을 하긴 싫어 내겐 소중한 너 였으니까나도 이런 내가 싫지만 이번엔 용서할까봐 아니 다시다시 고민고민 해 봤어한 번이 두 번이 될 거짓말 그래 너를너를 잊어잊어 잊을래또 다른 사랑이 내게 오겠지 (Rap) 하나라고 믿고 있던 우리 언 제나나를 믿고 있던 너에게 되돌릴 수 없던 후회 Come on Baby Baby 오 울고 싶고부르고 싶고 잡고 싶은 너인데 멀어지는 너너너 잡으려고 애를 쓰는 나의 맘 왜왜도대체 왜 내 맘을 몰라 그렇게 so tell me now what you gonna do I am a take it vack in time when you play around boy! I will show you wassup!No way but 잠깐만 날 바라봐 우 돌아와 나나 Baby boo 넌 억울한 거야너는 가버리겠다고 no no 가지마 정말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너였니지금도 난 모르겠어내가 필요하단 말 나뿐이란 말 그녀도 나 처럼 믿었니 너의 변명을 이유를 듣기 싫어너무 화가나 눈물이 나와 그냥 모두가 장난이라고 웃으며니가 말해준다면 좋겠어 너와 이별을 작별을 하긴 싫어내겐 소중한 너 였으니까나도 이런 내가 싫지만 이번엔 용서할까봐 우리 얘기는, 사랑은 여기까지 그래,이대로 모든걸 끝내내 맘 돌리려고 하지마 너라면 용서하겠니 Tell me, Tell me, Tell me, Tell me - You love me아니야 아니야 넌 늦었어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 Say good bye아니야 아니야 너를 지울래 이게 뭐야뭐야 내게내게 왜 이래꿈에도 잠시도 널 안 볼래우리 모든모든 사랑 니가니가 가져가새로운 사랑이 내겐 올 꺼야 Tell me, Tell me, Tell me, Tell me - You love me (Rap) can I hit you up sometime girl from the 9 I be drappin the functions and poesuming cons umptions 나를 떠나가지마 bye bye 그 모든 약속들 lie lie 니가 나에게 얼만큼 상처줬는지 내 마음속에 너는 지워졌어 이것만을 알아줘 니가 내개 내개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란걸 Tell me, Tell me, Tell me, Tell me - You love me

바닐라 소스-The End~

바닐라 소스-The End모른척 소리쳐봐 forget me now뒤돌아 울지는마 I'm not to blame for it습관처럼 만난 그 날들이이젠 의미 없는 그 미소 속 cry너와 주고받던 사랑이 이젠 짐이 되어 우리 맘을 누르고 깊게 박혀있던 너와의 그 행복을 놓아줄우리의 마지막에오~에오~ ~ ~ ~ ~ It'll be painful에오~에오~ ~ ~ ~ ~ better to break up 에오~에오~ ~ ~ ~ ~ It'll be painful에오~에오~ ~ ~ ~ ~ It' the end for us

2016년 5월 23일 월요일

Anna Desm..-데살로니가후서~

Anna Desm..-데살로니가후서데살로니가후서1장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Paul, Silas and Timothy, To the church of the Thessalonians in God our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2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Grace and peace to you from God the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We ought always to thank God for you, brothers, and rightly so, because your faith is growing more and more, and the love every one of you has for each other is increasing. 4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Therefore, among God's churches we boast about your perseverance and faith in all the persecutions and trials you are enduring. 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All this is evidence that God's judgment is right, and as a result you will be counted worthy of the kingdom of God, for which you are suffering. 6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God is just: He will pay back trouble to those who trouble you 7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and give relief to you who are troubled, and to us as well. This will happen when the Lord Jesus is revealed from heaven in blazing fire with his powerful angels.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He will punish those who do not know God and do not obey the gospel of our Lord Jesus. 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They will be punished with everlasting destruction and shut out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and from the majesty of his power 10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on the day he comes to be glorified in his holy people and to be marveled at among all those who have believed. This includes you, because you believed our testimony to you. 11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With this in mind, we constantly pray for you, that our God may count you worthy of his calling, and that by his power he may fulfill every good purpose of yours and every act prompted by your faith. 12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We pray this so that the name of our Lord Jesus may be glorified in you, and you in him, according to the grace of our God and the Lord Jesus Christ.

구운몽 [김만중]~

구운몽 [김만중]조선 숙종 때 서포 김만중이 지은 한글 소설로, 남해의 유배지에 있는 지은이가 홀로 계신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려고 하룻밤에 썼다고 한다. 이 작품은 우리말의 표현 능력을 잘 살렸으며, 방대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구성을 통해 이야기를 흥미있게 엮고 있다. 이 작품은 김만중의 뛰어난 작가적 역량을 보여 주는 것으로, 17세기는 물론 이후의 많은 고전 소설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한림이 기꺼워 이르되, 천하에 신선이 없으면 모르되, 만일 있다면 이 산중에서 구하라. 하고 찾아가 구경코자 하더니, 홀연 정생 집 하인이 땀을 흘리며 빨리와 헐떡이며 이르되, 낭자의 환후가 졸지에 위급하나이다. 정생이 급히 일어나며 이르기를, 실인의 병이 이렇듯 급하니, 역시 아까 말한 바 인연이 없음을 가히 짐작하겠도다! 하고는, 나귀를 채찍질하며 돌아가더라.양한림이 정생을 보낸 후에 심히 무료하나, 구경할 흥취 오히려 다하지 아니하여 물줄기를 따라 동구로 들어가니, 물과 돌이 깨끗하여 한 점의 티끌도 없으니 마음이 저절로 상쾌한지라 홀로 배회하더니, 붉은 계수나무의 잎새 하나가 물 위에 떠 내려오더라. 잎새에 글씨 두어 줄이 씌었거늘 집어 보니 한 수의 글귀라, 하였으되,(/ p.81)

당나귀와 떠난 여행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당나귀와 떠난 여행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모데스틴'이라는 당나귀와 함께 종교분쟁의 한 중심지였던 프랑스 남부의 세벤느를 여행하고 쓴 글이다. 르 퓌로부터 출발하여 120마일이나 되는 험준한 산길을 걸어 생 장 뒤 갸르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1879년에 발표된 이 여행기는 여행기 장르를 개척한 선구적인 작품으로 손꼽혀 많은 사람들이 세벤느에 와서 그의 여행을 그대로 따라했을 정도다. 1978년에는 스티븐슨의 세벤느 여행 백주년 기념행사가 열려 세계의 많은 RLS(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약칭) 애호가들이 몰려와 당나귀를 끌고 스티븐슨의 여행을 다시 재연하기도 하였다.이 작품은 참으로 다양한 빛깔을 지니고 있다. 당나귀와의 실랑이를 포함해 도보여행중에 겪는 수많은 에피소드에서는 가벼운 웃음을, 수도원 에서는 경건함과 관용을, 종교분쟁지인 세벤느에서는 역사의 슬픔을, 소나무 숲에서 보낸 하룻밤에는 무한한 환희와 낭만을, 당나귀와의 이별 장면에서는 시큰함과 애틋함을 함께 체험하도록 이끈다.자연 한가운데서 고독을 즐기면서 인간의 삶을 명상하는 스티븐슨의 여행기는 우리 모두 최소한의 경비만 가지고 배낭을 하나씩 짊어진 채. 황량하고 거칠지만 소박한 우리 시골 한가운데를 향해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참고로 원서에는 없는 역자 원유경 교수의 는 작가를 이해하는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며, 스티븐슨을 연구하는데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내가 다시 잠에서 깨어났을 때 (9월 29일 일요일). 수 많은 별들이 사라졌고, 가장 강한 빛의 별 몇 개만 남아 아직도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멀리 동쪽으로 지난밤에 잠이 깼을 때 보았던 은하수같이 지평선 위로 흐릿한 빛의 안개가 보였다. 날이 새고 있었다. 나는 등불을 켜고 반딧불 같은 그 불빛에 의지하여 장화와 각반을 신었다. 모데스틴을 위해 빵을 좀 떼어내고, 시내에서 물통에 물을 채운 뒤, 내가 마실 초콜릿 차를 끓이려고 알코올 램프를 켰다. 푸른 어둠이 내가 그렇게 달콤하게 잠을 잤던 숲의 빈터를 넓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곧이어 비바레 산꼭대기를 따라 오렌지 빛깔의 넓은 띠가 생겨나더니 금빛으로 녹아들었다. 차츰차츰 아름답게 다가오는 새벽에 내 마음은 엄숙한 기쁨에 사로잡혔다. 나는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즐겁게 들으면서, 기대하지 못했던 어떤 볼꺼리가 있을까싶어서 주위를 살폈다.(소나무 숲에서 보낸 하룻밤/ p.109)

2016년 5월 22일 일요일

무꼬리-마술사 모자 속 토끼 찾기~

무꼬리-마술사 모자 속 토끼 찾기어디에 있니 어디에 있니 난 널 찾고있어날 만나줄래 물어볼게있어너는 알고 있을 것 같아나 꿈 꿀 수 있을까 내 꿈을 본 적이 있니그곳으로 가는게 이렇게 외로운거니날 안아줄래 내편이 되줄래 모자속의 비밀을 말해줘사람들이 그러더라꿈을 꾸라고내 꿈에게 정말 미안해 아직 널 찾아주질 못해서나 꿈 꿀 수 있을까 내 꿈을 본 적이 있니그곳으로 가는게 이렇게 외로운거니날 안아줄래 내편이 되줄래 모자속의 비밀을 말해줘***아래 ( )안은 토끼(쉿! 이건 비밀인데 잘 생각해봐이미 알고 있어 넌 그걸아무도 도와줄 수 없어말도 안해 줄껄그래도 넌 포기 안할꺼잖아)난 무얼 사랑했을까난 무얼 꿈 꾸었을까내가 가려는 이길이 말도 안될지몰라 그래서 난 두려워 슬-퍼 내가 사랑했던 행복했던 꿈을그걸 잊을까봐날 안아줄래(안아줄께)내편이 되줄래(난 네편이야)모자속의 비밀을 말해줘(마법을 풀 순간이 올꺼야)그럼 다시 한번 가 볼께(그건 너만 할 수 있어 많이 아플지도 몰라)날 기다려줄래(그게 비밀인거야)쉿!

단테의 신곡 [단테 알리기에리]~

단테의 신곡 [단테 알리기에리]영혼 구원을 향한 지옥, 연옥, 천국으로의 여정을 이제 최고의 聖畵와 함께 만난다!!이 책은 단테와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한 르네상스 위대한 화가들의 작품 130여점을 수록했다. 인류의 소중한 문화재산인 그림들은 책 내용 전달을 용이하게 하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신곡이 표현하는 중세의 종교관에 대한 독자들의 상상력을 신선하게 자극할 것이다. 책의 구성은 한 쪽 페이지에 텍스트, 다른 쪽 페이지에 성화로 제작되어 있다.지옥 편, 연옥 편, 천국 편 모두가 한 권에 담겨 있으며, 내용적으로는 상당히 생략되어 있다. 역으로 말하자면, 꽤 쉽게 신곡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물론 14,233줄에 달하는 장편 서사시로서의 매력과 아름다움은 반감되겠지만...그러나 성화들은 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 아름다움, 섬세함, 박력. 모든 것이 완벽하다.윌리엄 블레이크, 구스타프 도레 등 다른 예술가들의 것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새로운 버전의 '신곡' 탄생이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 읽을 수 있고, 훌훌 넘기며 그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기 때문에 한 권의 좋은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2016년 5월 21일 토요일

거울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롤]~

거울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롤]원서의 제목(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을 보다 정확히 번역하면 [거울을 통하여 앨리스가 거기서 발견한 것]이 적절하나 일반인에게 많이 통용되고 있는 책제목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따랐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읽었을 때 원어민들은 삼촌이나 이모가 조카에게 읽어주는 느낌을 갖는다고 한다. 이번에는 그 느낌을 살려서 될 수 있으면 읽어주는 느낌을 살려 번역했다. 초등학교 초년생 정도의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 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잃지 말아야할 교훈, 혹은 진실이 있다면 무엇일까. 캐럴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서시에서 지은이는 [밖에는, 서리, 앞을 가리는 눈,/ 폭풍의 변덕스런 광기 뿐-/ 안에는, 붉게 타오르는 벽난로의 빛,/ 기쁨에 찬 어린 시절의 보금자리./ 마법의 말이 그대를 단단히 붙잡아 둘 테니,/ 미친 듯한 바람 소리는 신경을 안 쓰게 되리.]라고 말한다. 이 말에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그러나 어른은 '잠들 시간이 가까워져 초조해하는, 우리는 나이 든 아이들일 뿐'인 어른이다 - 이 이야기를 가슴속에 깊이 간직하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듬뿍 묻어난다. 캐럴이 단지 아이가 즐기라고만 이 작품을 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하는 대목이다. 무엇을 가슴속에 간직하기를 바랐을까? 우리는 작품을 읽고 해석하고, 작품에 나오는 문장으로 추측할 뿐이다.줄거리작품의 큰 흐름은 앨리스가 고양이와 놀다가 거울 속으로(1장) 들어 가, 살아 있는 꽃밭(2장)에서 꽃들과 대화를 하고, 곤충들이(3장) 어떻게 이름이 붙여지는지를 보고, 쌍둥이 형제 트위들덤과 트위들디를(4장) 만난다.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여왕을 만나는데 여왕이 양이(5장) 된다. 그리곤 그 유명한 달걀모양의 인형인 험프트 덤프티를(6장) 만난다. 사자와 유니콘이(7장) 왕관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붉은 기사와 흰 기사가 싸우는 것을 보았고(8장), 마침내 졸에서 출발한 앨리스가 여왕이(9장) 된다. 붉은 여왕을 잡아서 흔드는데(10장) 여왕이 원래 고양이였고(11장), 자기가 경험한 그 모든 것을 누가 꿈꾼 건지 질문한다.(12장)처음부터 쉽게 이해하기 힘든 게 여기서 '거울'이 무엇을 의미 하는가이다. 아마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우리의 인식의 근간을 형성하는 곳이 아니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의 큰 줄거리는 졸인 앨리스가 여왕이 된다는 것이다. 여왕이 된다는 것이 권력이 있는 사람이나 재물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꿈꿀 수 있는 사람이라는 데 있다. 여기서의 꿈은 아마 우리가 일상적으로 꿈꾼다고 할 때의 의미와 사물과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주체의 힘도 포함된 것 같다. 그러기에 8장에서 앨리스는 붉은 왕의 꿈속에 있는 앨리스가 되기를 당연히 강하게 거부한다. ['그럼 결국 내가 꿈을 꾼 게 아닌데', 앨리스는 혼잣말을 했어. '만약- 만약에 우리 모두가 똑같은 꿈의 한부분이 아니라면 말이야. 단지 그게 붉은 왕의 꿈이 아니라, 내 꿈이었으면 난 정말 좋겠어! 다른 사람의 꿈속으로는 정말 들어가고 싶진 않거든']이라며 자기가 이 모든 것을 꿈꾸는 주체이길 원한다. 이 주체인 나는 졸에서 여왕이 되는데 각 장마다 질문하고 있는 물음에 답해야한다. 그래야만 9장에 이르러서 스스로 인식의 주체인 여왕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식의 주체인 내가 혹은 앨리스가 움직이는 가상의 공간은 체스 판이다. 체스에서는 졸이 살아서 마지막까지 가면 여왕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라도 졸인 인생에서 여왕인 인생을 살고 싶지 않겠는가? 체스 판은 혹은 주체의 공간은 주체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끼친다. 그러기에 이 세계에서는 주체의 위치 혹은 자세가 끊임없이 흔들리는 것이다. 캐럴은 이것을 아이에게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내 마음은 호수 [박경리]~

내 마음은 호수 [박경리]선악의 기준을 넘어선, 윤리를 넘어선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있는 진짜 사랑 1955년 단편 [계산]으로 문단에 나온 박경리는 1957년 [애가]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장편 창작의 길로 들어선다. 이후 1959년 현대문학에 연재한 [표류도]는 문단과 독자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며 ‘내성문학상’을 수상한다. [내 마음은 호수]는 [표류도] 다음에 발표한 박경리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이 작품은 1960년 4월 6일에서 12월 31일까지 [조선일보]에 총 269회 연재되었다. 특이한 사실은 [내 마음은 호수]와 함께 지방 신문과 여성 월간지에 [은하]([대구일보],1960.4.2-5.26)와 [성녀와 마녀]([여원],1960.4-1962.3)가 동시에 연재되었다는 점이다. 세 개의 지면에 동시에 작품을 연재하는 상황이 연출된 셈인데, 이러한 글쓰기의 과정은 작가의 생활고와 관련한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작가 박경리는 동시다발적인 창작과정을 통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가족들의 얼굴에 떠도는 불안의 그림자'도 지울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박경리는 그러한 상황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게적지근한 안도'에 따른 '자기혐오'를 느끼며, '세속적인 성공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겠는가, 내 문학하고 무슨 상관이겠는가? 내 인생하고 무슨 상관이겠는가'라고 자문하기도 하였다.[내 마음은 호수]와 함께 비슷한 시기에 연재를 시작한 [은하]와 [성녀와 마녀] 이 세 작품은 모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낭만적 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은하]의 경우는 애정이 비극적으로 종결되던 이전 소설과 달리 여성이 기혼자임에도 불구하고 진실한 사랑을 추구하여 적극적인 애정 실현의 가능성을 시사해주는 작품이다. [성녀와 마녀]는 여성을 남성중심적 사고 혹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이분법적으로 평가하고 타자화하는 당시 사회를 비판한 작품으로 평가할 만하다.[내 마음은 호수] 역시 기혼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여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그 사랑을 실현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주인공 유혜련은 소설가이다. 여성 소설가가 등장하는 박경리의 또 다른 소설 [영원한 반려]나 [겨울비]와 비교해 볼 때 [내 마음은 호수]는 소설가인 주인공의 문학관이나 창작 과정 등은 소략되어 있다. 실제로 작품 중반 이후부터는 문학과 관련한 언급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며, 이영설과 유혜련, 그리고 송병림을 중심으로 한 얽히고설킨 관계망이 주된 서사를 이룬다.흘러가지 않는 호수 같은진정한 사랑[내 마음은 호수]는 소설가인 혜련과 음악가인 영설의 예술적 성취 과정이나 예술가로서의 갈등보다 그들의 사랑이 중심서사로 자리 잡고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은 혜련의 남편 명구에 의해 깨어졌고, 명구가 실종된 상태에서 영설의 구애를 다시 받아들이기까지 우여곡절을 겪는다. 무엇보다 혜련의 마음을 열게 한 것은 죽음에 대한 예감,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시간이다.혜련이 앓고 있던 지병이 악화되고 영설과 화해를 이룬 후부터 작품에서 이 두 사람의 비중은 약해진다. 그리고 서사의 중심은 혜련의 딸 진수를 사랑하는 송병림이라는 20대 청년으로 옮겨간다. 송병림은 25세의 한석중의 외사촌 동생으로 잘 생긴 얼굴에 '음향 좋은 목소리'를 가진 매력적인 인물이다. 현재는 문리대 수학과를 휴학 중이며, 나중에 경제과로 전과를 한다. 송병림은 작품 속 등장인물 중 가장 적극적으로 당시의 시대상황과 긴밀하게 접속되어 있는 인물이다.송병림은 6·25 전쟁 발발 후 의용군으로 출병하였으나 회의를 느끼고 도주하여 미군에 투신하였다. 형은 월북하였으며, 어머니는 전쟁 중에 폭사하였다. 휴전 후에는 서울로 돌아와 대학에 복학하여 소모임 활동을 하다가 불순세력으로 몰려 고문을 당하기도 한다. 송병림이 끌려가는 상황의 긴장과 그가 고문을 당하며 겪는 고통과 갈등, 그리고 무고한 사람을 좌익 세력으로 몰아 목숨을 위협하고 반정부적인 인사를 좌익세력으로 조작하려는 정부기관의 행태가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송병림은 '절망은 절망대로 표출'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며 창작을 그만두려는 혜련을 만류하는, 유일하게 유혜련의 작품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인물이기도 하다.[내 마음은 호수]는 송병림을 통해 미약하나마 작가의 정치적인 관점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박경리는 의도적으로 송병림을 부각시키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내 마음은 호수] 연재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4.19 혁명이 일어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듯하다. 4.19의 경험은 청년들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였고 그것은 [내 마음은 호수]의 송병림을 형상화하는 데에 애정을 쏟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송병림을 둘러싼 이야기의 핵심 역시 ‘혁명’이 아니라 ‘사랑’이다. 그 사랑은 작품의 제목에 걸맞은 낭만적인 사랑이라기보다는 불륜과 금기, 근친상간과 자살 미수 등이 어우러진 사랑이다. 마음의 척도는 풍습이나 제도가 아닌 오직 사랑사실 작품 속에서 [내 마음은 호수]라는 제목에 어울릴 만큼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사랑은 찾아보기 힘들다. ‘호수’는 고요하고, 평화로우며, 아늑하고 안정적이다. 그것이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호수’에 대한 이미지일 터이다. 하지만 혜련의 사랑은 호수라기보다는 정체되어 있는 빠져 나올 수 없는 늪과 같다. 영설의 강한 집착과 격정적인 사랑은 예측하기 힘든 태풍과 닮았다. 무모하고도 일방적인 명희의 사랑도 호수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내 마음은 호수’라는 타이틀을 선택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집착 없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는 노릇이고 사랑이란 언제나 무모하기 마련이지만 작가는 결국 사랑은 호수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아무런 아픔도 갈등도 욕망도 없는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던진 돌멩이에 파문이 일고 출렁이기는 하지만 호수는 이내 다시 평화롭게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호수의 바닥에는 시간의 나이테를 새긴 곡절 많은 돌멩이들이 쌓여 있겠지만, 호수는 그 모두를 품고 그 자리에 있다. 강물은 흘러가기 마련이고 바다는 시시각각 변화하지만 호수는 언제나 그 자리에 그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위태로울 수밖에 없지만 작가는 그렇다고 그러한 사랑을 비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호수처럼 그 모두를 껴안을 수 있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누가 뭐래도 박경리의 대표작은 [토지]이다. [토지]에서는 서로 신분이 다른 서희와 길상이 결혼을 한다. 용이는 본처가 죽자 임이네 사이에서 아들을 얻고 기생의 딸인 월선과 가슴 아픈 사랑과 이별을 한다. 윤씨부인을 겁탈하는 동학 장수 김개주, 그 사이에 출생한 구천이는 형의 아내를 사랑하여 형수인 별당아씨를 데리고 야반도주를 한다. 이상현은 기생이 된 봉순에게서 딸 양현을 낳는다. 그리고 의남매처럼 지내던 양현을 사랑하는 윤국이, 식민 치하에서 벌어지는 일본인 오가타와 유인실의 사랑....... [내 마음은 호수]에서 보여주는 사랑은 선악의 기준을 넘어선 통상의 윤리 너머에 있다. 그러한 사랑은 비단 이 작품뿐 아니라 박경리의 작품들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영설의 말은 모두가 다 생각 밖의 것이었다. 영설은 자기 앞에 미안하게 고개를 숙일 것을 믿었다. 그리고 버림당한 여자가 비참하게 그의 앞에 섰을 것을 생각하고 몸을 떨었던 것이다. 생명이 있는 한에 있어서 그의 앞에 나타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러나 그는 영설을 찾아가고야 말았다. 무서운 패배와 굴욕, 그러나 혜련은 진수를 위하여 그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의 접촉을 막지 않으면 안 될 불가피한 사정이 개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설은 뭐라고 말했던가. 그는 실로 해괴망측하게도 혜련의 소유 권리를 주장했던 것이다.(/ p.103)“전쟁은 내 성격을 좀 강인하게 했구, 맹목적인 생명의 존재를 강요했었다. 그러나 목숨을 부지한 대신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 같다. 잃은 것, 그 많이 잃은 것 중에서 우린 노래를 들 수 있다. 그 노래를 낭만이나 감상, 혹은 눈물 같은 것으로 해석해도 좋구, 인간이나 자연에 가는 애정이라 봐도 좋을 거야. 아까도 명희하구 얘기했지만 존재와 사색 그 어느 것이 선행하느냐의 문제는 여전히 혼돈 속에 있는 일이구, 또 거기에서 말하는 사색이라는 것도 겉치레의 낭만이나 눈물, 애정 같은 일시적 기만이 아닌 보다 본질적인 것이겠지. 존재를 뛰어넘으려는 사색, 사색을 뛰어넘으려는 존재, 그것을 증언하려구 했겠지. 그러나 사람이란 기만 속에 사는 것이 더 용이하구 거짓된 진실을 진실이라 믿구, 낭만하는 생활이 아름답게 보이는 거지. 그러나 우리는 전쟁 속에서 그 기만을 박탈당하구 말았다. 우리는 피비린내 나는 진실의 광장廣場으로 끌려 나왔다. 그곳에는 무수한 생명들이, 그리구 죽음이 와글거리구 있었다. 그것이 진실이었더란 말이야. 아무 의의도 없는, 마치 태양 아래 뻗어진 지렁이와 같은 진실이었더란 말이야. 하긴 얼마간의 세월이 흐르구 시간이라는 베일이 가려지면 이러한 진실은 서사시가 될 것이요, 하나의 비극으로 윤색될 테지, 그러나 이 서사시에 주어질 주제는 뭐냐 말이다. 이 비극에 주어질 영광의 아름다움을 어디서 끌구 온단 말이냐. 동족상잔, 외세를 서로 등에 업구 누구에게 총을 겨누느냐 말이다. 산산 골골의 하늘밖에 원망할 줄 모르는 어진 백성들은 죽음의 대열로 채찍질 당하구 아녀자들의 썩는 시체는 까마귀 밥이 되구 독재자들의 성벽은 황금으로 높아지기만 한다!”(/ p.147)얼마 후 혜련은 서울에 내렸다. 시가는 죽음의 도시처럼 조용했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탓인지 가로는 온통 빙판이었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살을 엘 듯이 차가왔다. 멀리서 은은한 포격 소리가 황량한 공기를 흔들었다.서울은 거의 무인지경이었다. 간혹 만나는 사람이 있어도 군복 차림을 한 젊은이들뿐이다. 거리마다 부서져 흐트러진 벽돌 조각, 앙상하게 벽만 남은 고층 건물, 어디를 둘러보아도 살벌한 폐허요, 포격과 총탄의 자국이 처절한 격전을 연상시킬 뿐이다.일진의 바람이 혜련의 까만 머플러를 휘날렸다. 푸른 하늘과 열도를 느낄 수 없는 태양의 광선과 광물성으로 뒤덮인 허허한 벌판을 한 마리의 갑충처럼 걸어가는 혜련이었다.(/ p.243)

2016년 5월 20일 금요일

유미선-온 맘 다해~

유미선-온 맘 다해주님과 함께 하는 이 고요한 시간 주님의 보좌앞에 내 마음을 쏟네 모든 것 아시는 주님께 감출 것 없네 내 맘과 정성 다해 주 바라나이다 나 염려 하잖아도 내 쓸것 아시니 나 오직 주의 얼굴 구하게 하소서 다 이해할 수 없을 때라도 감사하며 날마다 순종하며 주 따르리오다 온 맘 다해 사랑합니다 온 맘 다해 주 알기 원하네 내 모든 삶 당신 것이니 주만 섬기리 온 맘 다해 주님과 함께 하는 이 고요한 시간 주님의 보좌 앞에 내 마음을 쏟네 모든 것 아시는 주님께 감출 것 없네 내 맘과 정성 다해 주 사랑합니다 온 맘 다해 사랑합니다 온 맘 다해 주 알기 원하네 내 모든 삶 당신 것이니 주만 섬기리 온맘다해 온 맘 다해 사랑합니다 온 맘 다해 주 알기 원하네 내 모든 삶 당신 것이니 주만 섬기리 온 맘 다해 주만 섬기리 온 맘 다해

유라시아의 꿈1 [이원호]~

유라시아의 꿈1 [이원호]허무의 바다에서 고독의 땅 끝에서 어느날 문득 버려진 자의 운명을 거부하며 존재의 의미를 찾아나서는 이방인, 프랑스 외인부대 소속의 한국인 용병 김한. 세느강에 뿌려진 격정의 사랑도,아라비아의 낭만도 모두 광풍에 날려 보내고 인도양의 사이클론을 등에 타고 시베리아까지 분노에찬 야수, 그의 승부가 시작된다.

금사랑-너 때문이야~

금사랑-너 때문이야너없이 산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너 때문에 더없이 행복한거야포기했던 많은 날들도 너의 가슴 기대어 살며내 작은 소망 내사랑은 너 뿐이야오똑한 콧날 따스한 눈빛 포근한 너의 목소리내가 사는건 너때문이야 내 생 전부야너 없이 산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검은빛 바다에 너는 나의 등대야너없이 산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너때문에 더없이 행복한거야포기했던 많은 날들도 너의 가슴 기대어 살며내 작은 소망 내사랑은 너 뿐이야오똑한 콧날 따스한 눈빛 포근한 너의 목소리내가 사는건 너때문이야 내 생 전부야너 없이 산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곰은 빛 바다에 너는 나의 등대야검은 빛 바다에 너는 나의 등대야?

2016년 5월 19일 목요일

주진모-비처럼 음악처럼~

주진모-비처럼 음악처럼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난 오늘도 이 비를 맞으며 하루를 그냥 보내요아름다운 음악 같은 우리의 사랑의 이야기들은흐르는 비처럼 너무 아프기 때문이죠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난 오늘도 이 비를 맞으며 하루를 그냥 보내요아름다운 음악 같은 우리의 사랑의 이야기들은흐르는 비처럼 너무 아프기 때문이죠그렇게 아픈 비가 왔어요오 오 오

김세화-나비 소녀~

김세화-나비 소녀옛날 옛날 한 옛날에 예쁜소녀 하나가꽃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캐러 가다가꽃잎 속에 숨어 있는 나비한테 반해서나물 담을 바구니에 예쁜 나비가 가득호랑나비 한마리는 가슴에다 붙이고머리위에도 어깨 위에도노랑나비 붙일래 나비야 날아라내 마음도 함께 날아라나는야 아름다운 사랑의 나비소녀옛날옛날 한 옛날에 예쁜소녀 하나가꽃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러 가다가꽃잎 속에 숨어 있는 나비한테 반해서나물 담을 바구니에 예쁜 나비가 가득캐고 싶은 나물들아 한뿌리도 못캤지만나비가 좋아 나비가 좋아노랑나비 붙일래 나비야 날아라내 마음도 함께 날아라나는야 아름다운 행복의 나비소녀나는야 아름다운 행복의 나비소녀

룰스 오브 디셉션 [크리스토퍼 라이히]~

룰스 오브 디셉션 [크리스토퍼 라이히]국제스릴러작가협회 최고작품상 수상 크리스토퍼 라이히의 최고 화제작 ‘롤스 오브~’시리즈 첫번째 책 출간스파이 스릴러의 천재작가로 불리는 크리스토퍼 라이히의 최고 화제작.룰스 오브(Rules of) 시리즈 첫 번째 책 ‘룰스 오브 디셉션’ 한국어 번역본 출간.뉴욕타임스 슈퍼 베스트셀러 1800만 독자의 숨을 멎게 만든 스파이 스릴러의 본류. 2권 ‘룰스 오브 벤전스’(Rules of Vengeance) 3권 룰스 오브 비트레이얼(Rules of Betrayal)도 계약 마치고 현재 번역작업 진행중.뉴욕타임스 슈퍼 베스트셀러 1800만 독자의 숨을 멎게 만든 스파이 스릴러의 본류최고 수준의 전문 산악인이고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 외과의사인 조나단 랜섬은 아름다운 아내 엠마와 함께 스위스 알프스를 오르고 있었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거센 눈보라가 사방에서 몰아치고 있었다. 눈사태를 피해 스키로 하강하던 아내가 사고로 다리가 부러진 채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크레바스 아래로 추락한다.호텔로 돌아온 랜섬은 죽은 아내 앞으로 배달된 소포를 받아든다. 소포 안에는 두 장의 수하물 보관증이 들어 있었다. 변두리 기차역에서 수하물을 찾아오던 랜섬은 두 명의 스위스 경찰관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당해 죽을 고비를 넘긴다. 경관들을 죽이고 도주한 랜섬은 그때부터 정체 모를 음모의 수렁으로 계속 빠져든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것은 꿈에도 몰랐던 아내 엠마의 정체가 그 음모의 핵심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졸지에 경관 살인자가 되고, 전문 킬러의 추적까지 받게 된 조나단 랜섬은 필사의 도주를 계속한다. 마침내 랜섬은 아내의 정체가 비밀 스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전쟁을 택한 세력들의 끔찍한 음모를 중단시키는 것만이 자신이 살길임을 알게 된다. 최첨단 무기와 글로벌 테러리즘이 한데 뒤얽힌 스파이의 세계로 깊숙이 빠져드는 랜섬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고, 오직 목적만이 수단을 정당화시켜 주는 냉혹한 그림자 세계와 마주하는 주인공 랜섬.한번 잡으면 도저히 도중에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는 책이다. 톰 클렌시의 계보를 잇고 로버트 루들럼의 전성기 작품을 능가하는 걸작이다. - 빈스 플린“장담컨대 현실세계는 여러분이 알고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하고 흥미로운 음모에 의해 움직인다. 이 책을 구상하면서 나는 스토리를 어떻게 시작할지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들어 아는 내용을 그대로 쓰면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정보 분야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많았다. 신문이나 잡지에서는 절대로 읽을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오래 전부터 나는 워싱턴과 해외에 많은 친구들을 알고 있었고, 그 가운데는 정부 최고위직에 있는 외교관 스파이 군인 정치인들이 포함돼 있다.” (/ '작가의 말' 중에서)룰스 오브 디셉션은 천재 작가의 기상천외한 플롯과 반전, 음모와 기만으로 가득찬 전대미문의 스릴러이다. 독자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21세기 스파이 스릴러의 본류를 잇는 작가의 명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차가운 바람이 평원을 가로질러 불어오고 그 바람에 떠밀려온 나비 한 마리가 평원을 노닐고 있었다. 이 놀랍고도 자그마한 곤충은 날개를 팔랑이며 포물선을 그리듯이 오르내리며 하늘을 날고 있었다. 몸체와 달리 나비의 날개는 샛노란 바탕과 대조를 이루는 검은색 격자무늬를 띄고 있었다. 나비의 이름은 파필리오 파노프테스, '모든 것을 보는 자'라는 뜻의 별난 이름이었다. 나비는 날갯짓을 하며 전류가 흐르는 보안벽을 넘나들고 철조망 울타리 건너 접근금지 구역까지 날아 들어갔다. 철조망 울타리 너머에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색깔과 종을 자랑하는 야생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주변 어디에도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사는 집, 헛간, 그 어떤 종류의 건축물도 없었다. 꽃잎 밑으로 살짝 드러나 보이는 채 마르지 않은 흙더미들이 꽃밭을 손질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긴 여정에도 불구하고 나비는 꽃을 보고 멈추질 않았다. 향기를 머금고 있는 꽃가루를 찾아다니거나 달콤한 과즙을 맛보지도 않았다. 대신 마치 공기 그 자체만으로 자양분을 얻을 수 있는 듯 날기만 했다. 그렇게 나비는 옅은 빛깔의 겨울 하늘 아래 반짝이는 노란 날개를 팔랑이며 그곳에 머물렀다. 라벤더 덤불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험한 산에서 내려와 비옥한 초록 땅으로 흘러드는 시냇물을 마시지도 않았다. 사실 나비는 정확히 사방 1킬로미터를 경계로 하는 울타리를 벗어날 시도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다채로운 빛을 발하는 꽃밭 위를 맴도는 것에 만족하며 매일 밤낮을 잊은 채 쉬지도, 꿀을 빨지도 않고 앞뒤로 날아오르기만을 반복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 나쉬가 불어 닥쳤다. 바람은 빠른 속력과 엄청난 힘으로 앞에 놓인 모든 것을 강타하며 산맥을 지나 평원을 쓸고 지나갔다. 모진 바람을 나비는 이겨내지 못했다. 정해진 경계 안에서 맴돌기를 계속해 온 나비는 지치고 약해져 있었다. 세찬 바람이 불어와 나비를 들어 올렸고, 사나운 바람에 휘말려 빙글빙글 돌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연약한 몸체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접근금지 구역을 순찰 중이던 경비대원 한 명이 흙바닥에 떨어져 있는 노란 물체를 발견하고는 지프를 멈췄다. 그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발목까지 자란 풀밭에 무릎을 접고 쭈그려 앉았다. 이제껏 보아 온 나비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우선 다른 것들에 비해 몸체가 컸다. 실크섬유 같은 외피에 돌출된 종잇장처럼 얇고 뾰족한 금속성 두 날개는 뻣뻣하고 단단했다. 솜털로 덮인 흉부는 두 동강이 나 있고 초록색 전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그는 나비를 바닥에서 주워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 역시 그 시설에서 일하는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군인이기 이전에 기술자였다. 자신이 목격한 것의 정체를 알아낸 그는 충격에 휩싸였다.나비의 몸체 속에서 쌀 한 톨 크기의 알루미늄 처리가 된 배터리와 마이크로웨이브 발신기가 나왔다. 엄지손가락을 이용해서 나비의 더듬이를 짓누르자 껍질이 벗겨지면서 사람 머리카락만큼 가느다란 광섬유 케이블 다발이 드러났다. 아니야, 그는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빨리. 그럴 리가 없어.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갖가지 설명과 이론을 동원해 보았지만 어느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튀어나온 돌부리에 발이 걸려 바닥에 엎어졌다가 다시 일어난 그는 서둘러 지프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시각을 다투는 중대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무전기에 대고 서둘러 보고하는 내내 손마디가 부들부들 떨렸다. '놈들이 우리를 찾아낸 것 같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1조나단 랜섬은 고글에 붙은 얼음을 떼어 내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점점 악화되기만 하는 기상 상태 때문에 걱정스러웠다. 바람이 거칠게 울부짖으며 얼음과 모래를 얼굴에 뿌려댔다. 낯익은 바위투성이의 산봉우리들이 산과 계곡을 위협하듯 에워싸는 거대한 구름떼에 가려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몸을 앞으로 숙인 채 한 발 한 발 스키를 내딛으며 경사를 오르고 있었다. 스키 아래쪽에 부착된 나일론 실스킨이 눈을 움켜잡았다. 투어링 바인딩 덕분에 눈 위를 걷는 데도 아무 문제는 없었다. 서른일곱 살의 조나단은 큰 키에 날렵한 허리, 딱 벌어진 어깨를 갖고 있고, 꼭 죄는 양모 모자 아래 무성한 새치머리가 숨겨져 있었다. 짙은 와인색 눈은 스노고글이 보호해 주었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은 이틀 동안 까칠한 수염이 자라난 두 볼과 굳게 다문 입술뿐이었다. 낡은 스키 패트롤 재킷을 입었는데 산에 오를 때면 항상 입는 옷이었다. 뒤에서는 그의 아내 엠마가 빨간색 파카와 검정 바지를 입고 산비탈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오르는 속도는 일정치 못했다. 세 걸음 오르고 쉬고, 두 걸음 오르고 쉬고를 반복했다. 이제 겨우 중간 지점을 지났을 뿐인데 이미 지친듯했다. 조나단은 스키를 언덕에 수직 방향으로 돌려놓고 스키폴을 눈 속에 꽂아 넣었다. “그대로 있어.” 양손을 입에 대고 소리쳤다. 응답을 기다려 보았지만 아내는 울부짖는 바람소리 때문에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머리를 낮춘 채 그녀는 계속해서 불안정하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조나단이 옆걸음으로 경사를 내려갔다. 길은 가파르고 좁았으며, 한 쪽은 수직 암벽, 다른 한 쪽은 낭떠러지에 면해 있었다. 멀리 아래쪽에는 스위스 동부 그라우뷘덴주의 아로사 마을이 빠르게 움직이는 구름층 사이로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매번 이렇게 힘든 코스야?” 그가 다가가자 엠마가 물었다.“지난번에는 당신이 나보다 먼저 정상에 올라갔잖아.”“그건 8년 전 일이지. 나도 이제 늙었나 봐.”“뭔 소리, 이제 서른둘인데. 아직 한창이야. 내 나이만 되어 보라고. 그 다음부터는 완전 내리막이야.” 조나단은 배낭을 뒤져 물 한 통을 꺼내 아내에게 건넸다. “기분은 좀 어때?”“죽을 맛이야.” 그녀는 폴 위로 몸을 구부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셰르파를 불러야 될 것 같지 않아?” “여기선 안 되지. 셰르파 대신 난쟁이 족이 있긴 하지만. 훨씬 영리하기는 하지만 힘은 그리 세지 않을 걸. 우리 힘으로 알아서 버텨야 한단 소리지.”“정말이야?”조나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몸에서 열이 너무 많이 나는 거 같아. 모자 좀 벗고 물을 가능한 한 많이 마셔.”“여부가 있겠습니까, 의사 선생님. 분부대로 하지요.” 엠마는 양털 모자를 벗고 그렇지 않아도 갈증을 참고 있었다는 듯 물통 채 벌컥벌컥 들이켰다.8년 전 이곳을 함께 오르던 그녀의 모습을 조나단은 속으로 떠올렸다. 둘이 함께 한 첫 등반이었다. 당시 그는 ‘국경 없는 의사회’의 아프리카 지부에 막 자리 잡은 신참내기 외과의였고, 그녀는 고집 센 영국인 간호사였다. 출발하기 전에 그는 그녀에게 이전에 산을 많이 올라 봤느냐고 물었다. “조금요.”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대로 된 등반은 한 번도 못해 봤지만.” 그렇게 말하고는 전문 산악인 뺨치는 솜씨로 그를 가볍게 제치고 정상에 먼저 도착했던 것이다. “한결 나아졌어.” 엠마가 헝클어진 적갈색 머리를 손으로 손질하면서 말했다.“정말이야?”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녀의 담갈색 눈동자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미안해요.” “뭐가?”“잘 따라가지 못해서 말이야. 나 때문에 자꾸 느려지잖아. 그리고 지난 몇 년간 당신과 함께 와 보지 못한 것도 미안하구.”“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난 그저 당신이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엠마는 고개를 들어 그에게 키스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도.”“근데 말이야.” 그가 표정을 바꾸며 진지한 투로 말했다. “상황이 계속 안 좋아지고 있어. 아무래도 돌아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어.”그 말에 엠마는 물통을 넘기며 이렇게 대꾸했다. “에이, 그건 말도 안 돼. 여기서 당신을 이긴 적도 있잖아. 이번에도 그럴 테니 잘 봐.”“그럼 돈내기라도 할까?”“더 큰 걸로 걸지.”“오호, 그래?” 조나단은 물을 한 모금 들이키며 아내가 큰소리치는 게 듣기 좋다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얼마만인가? 6개월? 아니 일 년은 된 듯했다. 만성두통에 시달리기 시작하며 아내는 몇 시간이고 어두운 자신만의 공간으로 숨어 버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언제였는지조차 모르겠다. 그녀가 파리를 다녀오기 전부터 그랬는데, 파리로 간 게 작년 7월이었다. 그는 소매를 걷어 올리고 순토 손목시계의 여러 기능을 작동시켜 보았다. 고도 9,200 피트, 기온 섭씨 영하 10도, 기압 900mb에서 계속 낮아지는 중. 그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기압이 바닥까지 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야?” 엠마가 물었다.조나단은 물통을 배낭에 도로 집어넣었다. “좀 있으면 폭풍이 더 심해질 것 같아. 출발해야겠어. 정말 되돌아가긴 싫은 거지?” 엠마는 고개를 저었다. 자존심을 세우려는 게 아니라 결심이 단단히 선 것 같았다. “좋아, 그럼. 당신이 앞장 서. 내가 뒤에서 따라갈게. 바인딩 좀 조절할 테니 잠간 기다려.”무릎을 굽힌 채 조나단은 스키 앞쪽에 떨어지는 눈을 내려다보았다. 순식간에 스키가 눈으로 덮였다. 그러더니 스키 앞 끝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바인딩 조절할 생각은 달아나 버렸다. 그는 천천히 일어섰다. 머리 위로는 돌투성이의 석회암 정상까지 일천 피트나 펼쳐져 있는 암 빙벽 푸르가 노드원드가 까마득히 솟아 있었다. 거센 바람으로 인해 쌓인 눈이 빙벽 아래 모이면서 곧 질식할 것처럼 불안해 보이는 높은 경사면이 둑처럼 쌓여 있었다. 산악용어로는 ‘장전’이 된 것이었다.입이 바짝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는 노련한 산악인이었다. 알프스산맥, 로키산맥, 심지어 한 시즌 동안 히말라야산맥을 등반한 경험도 있었다. 위험한 상황도 많이 겪었다. 다른 사람들은 헤쳐 나오지 못했을 때 혼자서 헤쳐 나오기도 했다. 그는 위험이 닥쳐왔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거 느껴져?” 그가 물었다. “곧 무너지려고 해.”“무슨 소릴 들었어?”“아니, 아직은 아니야. 하지만….”저 너머 어디에선가…머리 위쪽 어딘가에서…멀리서 들리는 천둥소리가 산봉우리들을 넘어 울려왔다. 산이 흔들렸다. 푸르가의 눈 생각이 났다. 며칠 동안 계속된 추위로 눈이 얼어붙어 수십만 톤 무게의 거대 빙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가 들은 것은 천둥소리가 아니라 새로 만들어진 얼음판이 갈라지면서 그 밑에 있는 더 오래되고 단단한 빙설로부터 분리되어 나올 때 내는 소리였다.조나단은 산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전에도 한 번 눈사태에 갇혀 본 적이 있었다. 11분 동안 눈 아래 묻힌 채로 있어야 했다. 어둠속에 매장된 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얼마나 추웠든지 한쪽 다리가 뒤로 꺾여 무릎이 귀 바로 옆까지 올라와 있던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끝내 살아남았는데, 아래쪽으로 쓸려 내려가기 직전에 동료 한 명이 그의 패트롤 재킷에 있는 십자표시를 발견한 덕분이었다.10초쯤 지나자 울리던 소리가 그쳤다. 바람이 잦아들고 기이한 정적이 감돌았다. 입을 닫은 채 그는 허리춤에 감아둔 로프를 풀어 한쪽 끝을 엠마의 허리에 단단히 감았다. 되돌아가는 것은 더 이상 택할 방법이 아니었다. 곧 들이닥칠 눈사태의 경로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정면에 보이는 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는 수신호를 보내자 엠마는 바짝 뒤따를 채비를 갖췄다. “준비 됐어?” 하고 그가 신호를 보내 물었다. “오케이.” 대답이 돌아왔다.조나단은 스키를 산 위쪽으로 향하고 출발했다. 길은 산 측면을 따라 가파르게 위로 나 있었다. 걸음을 빨리 한 채 앞으로 나아갔다. 몇 걸음마다 멈춰 서서 어깨 너머로 아내가 다섯 걸음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확인했다. 바람이 동풍으로 방향을 바꿔 다시 불기 시작했다. 눈이 수평으로 불어 닥치면서 옷의 주름진 곳들을 할퀴었다. 발끝에 감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손끝에도 점점 마비증세가 오면서 나무토막처럼 굳어갔다. 시야가 20피트에서 10피트로 줄어들더니 이제는 코앞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위로 오르고 있고, 협곡을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타는 듯이 욱신거리는 통증을 통해 알 수 있을 뿐이었다. 한 시간이 지나자 산등성이에 올랐다.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그는 스키를 풀고 아내가 마지막 몇 피트를 올라오도록 도와주었다. 엠마는 스키를 가장자리 위로 들어 올리고는 곧바로 그의 품으로 쓰러졌다. 마치 경련이 일어난 것처럼 숨을 할딱거렸다. 그는 아내가 호흡을 가라앉히고 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껴안고 있었다. 그곳은 두 봉우리 사이의 능선이었기 때문에 바람이 성난 제트 엔진처럼 세차게 두 사람을 때렸다. 그러나 하늘은 일부 맑았고 잠깐 동안 발 아래로 프라우엔키르히 마을과 그 너머 다보스까지 이어지는 계곡이 눈에 들어왔다. 능선 반대쪽으로 스키를 타고 가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20피트 아래 노출된 암석들 사이로 엘리베이터 통로처럼 가파른 눈길이 뻗어 있었다. “로만의 길이야. 여기만 무사히 내려가면 아무 문제없을 거야.” 로만의 길이란 지명은 이 지역에서 구전되는 일화에서 비롯됐는데, 스키를 타고 이 길로 내려가다가 눈사태를 만나 죽은 가이드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엠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나단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내저으며 이렇게 내뱉었다. “너무 가팔라.”“전에는 더 가파른 곳도 내려가 봤잖아.” “아니야, 조나단. 저 낭떠러지 좀 봐. 다른 길은 없는 거야?” “오늘은 그래.”“그래도….”“음, 이 능선을 내려가든지 얼어 죽든지 둘 중 하나야.”그녀는 가장자리로 더 가까이 다가가서는 아래쪽을 자세히 보려고 목을 쭉 내밀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가슴에 파묻으며 뒷걸음질 쳤다. “미치겠네, 정말.”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곧이어 이렇게 말을 뱉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어쩌겠어. 한번 해 보자.” “조금 내려간 다음 빠르게 턴. 그러면 별거 아니야. 아까도 말했지만 우린 전에 더 심한 곳도 내려가 봤잖아.”엠마도 이번엔 좀 더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잠시 동안 그녀는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다고, 동상에 걸릴 위험에 처한 것도 아니고, 전에부터 자살 시도나 다름없는 이런 위험한 활강으로 자신을 시험해 보기를 기다려 온 사람처럼 보였다.“좋아, 그러면.” 조나단은 스키를 벗은 다음 덮개를 벗겼다. 그런 다음 스키 한 짝을 도끼처럼 쥐고는 사방 3피트 정도 크기로 눈 조각을 잘라내서 가장자리 너머로 떨어뜨렸다. 눈 조각은 경사면에 세차게 부딪친 후 산 아래로 굴러 내려갔다. 여기 저기 어지럽게 눈자취가 남아 있었지만 경사면은 무너지지 않고 단단히 서 있었다. “따라 내려와.” 그가 말했다. “내가 길을 만들어 나갈 테니.”옆에 와서 선 엠마의 스키 끝이 가장자리 너머로 나가 있었다. “뒤로 물러나.” 그가 서둘러 스키를 신으며 말했다. 안 봐도 아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엠마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먼저 갈게.”“당신한테 이 힘든 일을 다 맡길 순 없어.” “안돼, 그런 말은 입에도 담지 마!”“딱 한 번만 더 할 게, 이번이 마지막이야. 알았지?”“여보…안 돼!”엠마는 몸을 밀치며 앞으로 나갔고, 잠시 공중에 떠 있더니 곧 경사면 위로 착지했다. 스키 장비가 눈얼음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약간 불안정한 자세로 착지한 그녀는 번개 같은 속력으로 비탈길을 가로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스키 아래쪽이 약간 비뚤게 놓여서인지 몸의 무게를 눈 위에 너무 실은 채 달리는 것만 같았다. 양손의 위치 또한 지나치게 높았고, 몸은 스키로부터 너무 떨어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통제가 잘 안 되고 있는 것같이 보였다. 활주면 가장자리에 있는 바위가 조나단의 눈에 들어왔다. 턴을 해! 그는 속으로 외쳤다. 그녀와 바위와의 거리는 10피트쯤 되었다. 그리고 5피트. 다음 순간 완벽한 점프턴을 하면서 그녀가 방향을 틀었다. 조나단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엠마는 비탈길을 가로지르며 내달리다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턴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양 손은 몸 옆에 내려와 붙어 있고, 바닥에 숨어 있는 돌출 장애물들의 충격을 잘 흡수하도록 무릎도 알맞게 굽히고 있었다. 피로한 기색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승리의 주먹을 불끈 쥐고 들어올렸다. 아내가 해낸 것이었다. 30분 후면 그들은 프라우엔키르히의 스타펠알프 식당 부스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카페 루츠 두 잔을 앞에 두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연하게 웃으며 오늘 일을 얘기하고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호텔방으로 돌아가서 침대 위에 누울 테고, 그리고… 하지만 그 꿈은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다.세 번째 턴에서 엠마는 실패하고 말았다.가장자리에 걸렸거나, 아니면 턴이 0.5초 늦는 바람에 스키가 바위를 친 것 같았다.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공포에 질린 채 그는 아내가 활강로 중앙으로 큰 흔적을 새기며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양손이 눈 쌓인 바닥을 움켜잡으려 했지만, 경사가 너무 가파르고 얼음 때문에 너무 미끄러웠다. 하강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점점 더. 그러더니 솟아오른 턱에 부딪히면서 몸이 헝겊인형처럼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한쪽 다리가 꺾인 채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눈이 사방으로 뿜어져 오르고 양쪽 스키가 대포알처럼 하늘로 튀어 올랐다. 아내는 팔다리가 모두 접힌 채 데굴데굴 굴러 내려갔다. “엠마!” 그는 미친 듯이 소리치며 비탈길을 타고 내려갔다. 양팔을 벌려 균형을 잡고 전신의 근육을 팽팽하게 당겨 수직으로 활강했다. 경사면을 가로질러 안개가 장막처럼 자욱했고, 시계 제로의 백색 상태에 놓이면서 잠시 동안이지만 위아래가 구분이 안 되었다. 스키를 평행으로 한 채 그는 안개 속을 직선으로 파고 들어갔다. 경사면 저 아래 엠마는 머리와 배는 바닥을 향하고 얼굴이 눈 속에 파묻힌 채 누워 있었다. 그는 아내의 앞 10피트 정도 거리에서 멈춰 섰다. 스키를 벗고 큰 보폭으로 눈을 헤치고 다가가며 아내한테서 움직이는 기색이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엠마.”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말 들려?”배낭을 벗어 던지고 무릎을 꿇은 다음 아내의 입과 코에서 눈을 털어냈다. 한 손을 등에 가져다 대니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게 느껴졌다. 다행히도 맥박은 안정적으로 세차게 뛰고 있었다. 그의 배낭 안 나일론 그물 가방에는 예비 모자, 장갑, 고글, 그리고 캐필린 셔츠가 들어 있었다. 셔츠를 접어 아내의 뺨 밑에 받쳐주었다. 바로 그때 엠마가 몸을 움직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런, 젠장.”“가만히 있어.” 그는 응급실에서 쓰는 명령조로 소리쳤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허벅지부터 시작해서 두 다리를 살펴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야…그만!” 조나단은 손을 뗐다. 무릎 위 몇 인치쯤에 뭔가 날카로운 게 바지 안쪽에서 솟아올라 있었다. 흉측스런 돌출 부위를 보고 그는 그게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부러진 거지, 그렇지?” 엠마는 눈을 크게 뜨고 빠르게 깜빡거리며 물었다. “발가락을 구부릴 수가 없어. 밑에서 철사 뭉치로 묶어놓은 느낌이야. 너무 아파, 조나단. 엄살이 아니야.”“진정해. 내가 좀 볼 게.”스위스 군대 칼을 사용해서 그는 아내의 스키 바지를 길게 잘라낸 다음 천을 조심스럽게 찢었다. 부러진 뼈가 방한내복을 뚫고 삐져나오고, 뼈 주위 천은 피로 젖어 있었다. 대퇴골 복합골절이었다. “솔직히 말해 줘, 얼마나 다친 거야?” “별로 안 좋아.” 그는 마치 뼈에 살짝 금이 간 정도라도 되는 듯이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그리고 진통제 애드빌 다섯 알을 꺼내 물과 함께 삼키도록 도와주었다. 이어서 응급 상자에서 꺼낸 접착테이프로 스키 바지 찢어진 부분을 다시 봉했다. “등을 바닥에 대고 좀 누워 있어야겠어. 알았지?” 엠마가 끄덕여 보였다.“먼저 다리를 고정시킬 게. 뼈가 움직이지 않도록 해야 돼. 지금은 그냥 가만히 있어.”“맙소사, 조나단, 그럼 내가 이 꼴로 어디 다른 데로 가기라도 할까 봐?”조나단이 경사면을 올라가 아내의 스키와 폴을 찾아 왔다. 폴 대를 부러진 다리 양 옆에 대고 등산 로프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한쪽 끝을 묶은 다음 종아리부터 허벅지까지 둘둘 감았다. 그런 다음 아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가죽 지갑을 건넸다. “자.” 엠마는 지갑을 이빨로 꽉 물었다.조나단은 부러진 다리를 폴 대에 붙여서 감은 로프를 천천히 조였다. 엠마가 숨을 한 번 크게 빨아들였다. 이번에는 로프의 다른 쪽 끝도 묶은 다음 아내가 등을 대고 눕도록 몸을 뒤집은 다음 머리가 다리보다 높은 곳으로 가도록 뉘였다. 그런 다음 아내의 등 뒤쪽 경사면을 앉을 수 있게 손질했다. “좀 나아?” 엠마는 얼굴을 찡그려 보였는데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아내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괜찮아, 구조대를 불러 볼 게.” 그리고 재킷에서 무전기를 꺼냈다. “다보스 구조대.” 바람을 등지고 이렇게 불렀다. “응급상황임. 푸르가 남쪽 방향 로만의 길 아래쪽에 부상당한 스키어가 한 명 있음. 오버.” 돌아오는 건 정적뿐이었다. “다보스 구조대.” 반복해서 불렀다. “긴급 구조를 요하는 응급상황임. 응답하라.”요란한 백색 소음만 들려왔다. 다시 시도해 보았으나 역시 응답이 없었다. “날씨 탓이야.” 엠마가 말했다. “다른 채널을 사용해 봐!”조나단은 다른 채널로 돌렸다. 몇 년 전 그는 알프스 산맥에서 스키 순찰대원 겸 교관으로 일했는데, 그때 지역 내 모든 응급 구조대의 주파수를 맞출 수 있도록 무전기를 조정해 놓았다. 다보스, 아로사, 그리고 렌처하이데뿐만 아니라 주 경찰을 포함해서 스위스 알파인 클럽, 그리고 스키 타는 사람들과 등산객들에게 ‘미트 웨건’, 다시 말해 고기 배달차라 불리는 헬리콥터 구조팀 레가에게도 연락할 수 있게 해놓았던 것이다. “아로사 구조대. 푸르가 남쪽 면에 부상당한 스키어가 있음. 긴급 지원 바람.”역시 응답이 없었다. 무전기를 얼굴에 가까이 대고 보았더니 전원 등이 약하게 깜빡거리고 있었다. 허벅지에 대고 두드려 봤더니 불빛이 한 번 깜빡이더니 꺼져 버렸다. “전원이 나갔어.”“나갔다고? 무전기가? 왜? 어젯밤에 확인했잖아.”“그땐 괜찮았어.” 몇 번 켰다 껐다 해보았지만 무전기는 다시 켜질 것 같지 않았다. “배터리 문제야?”“모르겠어. 어제 새 걸 넣었는데.” 그는 장갑을 벗고 내부를 살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배터리 문제가 아니고 전선이야. 전원이 전송장치에 연결이 안 돼 있어.”“그럼 연결해.”“못 해 여기서는. 도구가 있어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는 무전기를 가방 안에 던져 버렸다. “전화기는 어때?” 엠마가 물었다.“전화기? 여긴 항상 통화 이탈 지역이잖아.” “그래도 해 봐.” 그녀는 다그치듯이 말했다.조나단의 핸드폰 화면 속에는 포물선 모양의 안테나 신호 아이콘 위로 가로선이 쫙 그어져 있었다. 일단 레가의 번호를 눌러 봤지만 전화는 걸리지 않았다. “안 걸려. 먹통이야.”엠마가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연락을 해야 하잖아.”“아무한테도 연락이 안 돼.”“무전기 다시 켜 봐.”“뭣하러? 말했잖아. 고장 났다고.”“그냥 하라면 해!”조나단은 아내 옆에 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여보, 잘 될 거야.” 그는 자기가 낼 수 있는 가장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 “내가 스키를 타고 내려가서 구조대를 데려올 게. 당신이 위치 탐지기만 갖고 있으면 내가 당신을 찾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을 거야.”“날 놔두고 가면 안 돼. 그 신호기가 있다고 해도 돌아오는 길은 절대 못 찾을 거야. 사방 20피트도 안 보이는데. 난 얼어 죽을 거야. 그럴 순 없어… 그렇게는 못해….” 말끝이 흐려지고 말았다. 그녀는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거의 성공할 뻔했는데. 정말이야…그 마지막 턴. 정말 조금 늦어 버렸어….”“내 말 잘 들어. 당신은 괜찮을 거야.”엠마는 그를 올려 보며 물었다. “정말 그럴까?” 조나단이 그녀의 뺨에서 눈물을 닦아주며 대답했다. “내가 약속할 수 있어.”그는 배낭에 손을 뻗어 보온병을 찾아 아내가 뜨거운 차를 한잔 마시도록 거들어 주었다. 아내가 차를 마시는 동안, 그는 아내의 스키를 가져와 뒤편에 X 표시를 만들고 나중에 먼 곳에서도 보이도록 표시를 해놓았다. 그리고는 입고 있는 순찰대 재킷을 벗어 아내의 가슴 위에 포개놓았다. 모자를 벗어 아내의 모자 위에 덧씌운 다음 목까지 덮이도록 끌어당겨 내렸다. 마지막으로 배낭에서 비상용 담요를 꺼내 조심스럽게 아내의 등 아래로 밀어넣어 가슴까지 감싸며 덮었다. 담요엔 ‘헬프’라는 큼지막한 형광 오렌지색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항공 구조요청을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15분마다 차를 조금씩 따라 마셔.” 아내의 손을 잡으며 그가 말했다. “계속 음식을 섭취하고 무엇보다 절대로 잠이 들면 안 돼.”엠마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녀는 혼신의 힘을 대해 그의 손을 맞잡고 있었다. “차 마시는 것 잊지 말고. 15분마다 꼭….”“그만하고. 어서 가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그의 손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꼭 쥐더니 내려놓았다. “점점 더 무서워지려고 해. 어서 가요.” “최대한 빨리 올 게.”엠마가 그의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조나단…그렇게 자신 없는 표정은 하지 말아요. 당신은 지금까지 나와의 약속을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는 사람이잖아.”2서부 다보스 지역에서 300킬로미터 떨어진 수도 외곽에 위치한 베른공항에는 아침부터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제설작업을 하러 온 차량들이 무서운 기세로 활주로를 누비며 눈을 치우고 있었다. 마치 알프스를 패러디 해놓은 것처럼 쌓아놓은 눈 더미를 유도로 입구 쪽에다 내다 버렸다. 14번 활주로 서편에서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몸을 웅크리고 모여 서 있고 모두들 시선은 하늘을 향해 있었다. 누군가를 체포하기 위해 비행기 착륙을 기다리며 모여 있는 것이었다. 남자 한 명이 그들 무리에서 약간 비켜 서 있었다. 쉰 살의 마르커스 폰 다니켄은 그리 크지 않은 키에 입 꼬리는 아래로 처져 있고, 검은 머리는 영국 근위보병의 까칠한 턱수염처럼 짧게 잘랐다. 한마디로 엄숙함을 풍기는 매서운 인상의 소유자였다. 지난 6년간 그는 약칭 SAP로 알려진 정보분석보안국을 이끌어 왔다. 극단주의자, 테러리스트, 그리고 타국의 스파이들로부터 자국의 안보를 지키는 것이 SAP의 임무였다. 미국에선 FBI, 영국은 MI5가 그런 역할을 수행한다. 폰 다니켄은 추위에 몸을 떨며 비행기가 착륙하기만을 기다렸다. “현재 상황이 어떤가?” 그는 옆에 서 있는 국경경비대 소령에게 물었다. “십분 후면 활주로를 폐쇄할 거랍니다. 비행 시정이 정말 고약하군요.” “항공기 상태는?” “엔진 한쪽이 고장입니다.” 소령이 대답했다. “다른 하나는 현재 과열 상태입니다. 착륙 시도를 하려고 기수를 막 틀었습니다.”폰 다니켄은 하늘을 살펴보았다. 활주로에 깔린 엷은 안개 사이로 노란 불빛의 착륙유도등이 깜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에 가려져 있던 항공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출발한 걸프스트림 G-4기였다. 모든 서방국가 정보국에선 테일 넘버가 N415GB인 그 항공기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2003년 2월 밀라노 시내에서 비밀리에 체포된 극단주의 이슬람 성직자인 아부 오마르를 태우고 이탈리아를 출발, 독일을 거쳐 이집트에 도착하여 동족의 손에 넘겨 심문받게 했던 바로 그 항공기였다. 마케도니아에서 체포한 레바논계 독일 시민권자 칼레드 엘 마스리란 남자를 태워 아프가니스탄 카불 외곽에 위치한 ‘솔트 핏’ 감옥으로 이송한 적도 있었다. 막상 이송하고 보니 그는 테러활동 혐의를 받는 칼레드 엘 마스리와 동일인물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한 건의 성공과 한 건의 실패. 최근 들어서는 늘 겪는 일이라고 폰 다니켄은 생각했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고 게임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항공기가 아스팔트를 세차게 내리치며 착륙했다. 타이어에서 물과 얼음조각들이 뿜어져 나오고, 배플이 닫히며 엔진에서 굉음이 났다. “나쁜 놈들.” 다소 긴 붉은 머리와 교수들이 많이 쓰는 동그란 테 안경을 쓴 마른 체구의 수척해 보이는 남자가 말을 내뱉었다. “어서 저 인간들 상판때기를 보고 싶군.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본때를 보여줄 거야.” 그 남자는 스위스의 법무장관 알폰소 마티였다. 마티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스위스 마라톤 국가대표 선수로 뛴 경력이 있었다. 당시 그는 더위에 지친 다리를 술 취한 사람처럼 흐느적거리며 올림픽 경기장으로 겨우 들어섰다. 응급의료진이 말리려고 했으나 그는 그들을 밀쳐내고 끝까지 뛰었다. 그리고 결승선을 넘자마자 쓰려졌고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아직도 그를 영웅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고,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도 물론 있었다. “절대로 실수하면 안 되네.” 마티가 폰 다니켄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 체면이 달린 문제야. 스위스에선 용납될 수 없는 일이야. 우린 중립국이고, 이번이야말로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할 기회란 말일세.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노련한 폰 다니켄은 언제 침묵을 지켜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무전기를 입에 가져다 대고 이렇게 말했다. “내 명령이 있기 전까진 라이트를 켜지 말 것.” 100피트 떨어진 곳에선 여러 겹으로 설치한 바리케이드 뒤에서 경찰차량 몇 대가 진입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폰 다니켄은 왼쪽을 흘긋 쳐다봤다. 다른 쪽 바리케이드 뒤에는 중무장한 국경수비대원 열 명을 태운 장갑차 한 대가 대기 중이었다. 그는 무력행사를 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며 반대했지만 마티는 요지부동이었다. 벼르고 벼른 날이 드디어 왔기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조종사가 항공기에서 내리게 해달라는 요청을 해 왔습니다.” 국경경비대 소령이 보고했다. 관제탑에서 커스텀 램프로 안내 중입니다.” 폰 다니켄과 마티는 표식이 없는 차량에 올라타고 지정된 파킹 지점으로 이동했다. 다른 사람들이 탄 차량도 그 뒤를 따랐다. 걸프스트림기가 활주로에서 방향을 틀며 커스텀 램프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폰 다니켄은 비행기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전원 출동.” 파란 불빛과 하얀 불빛이 검회색 하늘을 밝혔다. 숨어 대기하던 경찰차들이 쏜살같이 항공기를 포위했다. 장갑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공격 위치를 잡았고, 장갑차 위에는 병사 한 명이 50구경 포탑포를 잡고 조준자세를 취했다. 타격 장비를 입은 특공대원들이 차량에서 쏟아져 나와 비행기를 반원으로 둘러싸고 반자동 소총을 가슴 위로 받든 채 탑승구를 겨냥했다. 폰 다니켄은 팩스 한 장 때문에 이 난리를 피워야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는 차에서 내리며 권총의 탄창이 비어 있는 것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잠금장치가 되어 있는지 재차 확인했다. 세 시간 전 스톡홀름 주재 시리아 대사관에서 본국의 수도 다마스쿠스로 팩스 한 장을 보냈는데, 그 내용은 중동지역을 향해 가는 여객기 한 대의 승객명단이었다. 이를 스위스의 정찰위성 오닉스가 중간에서 가로챘다. 탑승자는 조종사, 부조종사, 그리고 두 명의 승객까지 모두 네 명이었다. 승객 한 명은 미국 정부 요원이고, 다른 한 명은 서방 12개국 사법 당국에서 인도 요구를 하고 있는 테러리스트였다. 가로챈 내용은 삽시간에 지휘부에 보고됐다. 팩스 사본 한 부는 폰 다니켄에게 이메일로 보내졌고, 다른 한 부는 마티에게 보내졌다. 사건은 거기까지였다. 여느 경우와 마찬가지로 ‘추가 행동 금지’란 딱지가 붙은 정보 사건으로 마감되는 듯했다. 그런데 문제의 항공기가 스위스 항공교통국에 무전을 보내 엔진 한 쪽이 고장 나 착륙이 요구되는 상황이니 비상착륙 허가를 해달라는 요청을 해오며 상황이 바뀌었다. 항공기의 앞문이 바깥쪽으로 열리며 계단이 동체에서 풀려나왔다. 폰 다니켄보다 앞장 서 걷고 있던 마티의 걸음걸이가 점점 빨라졌다. 조종사가 출입구에 나타났다. 법무장관은 수색영장을 내밀며 말했다. “인권에 관한 제네바협약에 위배되는 범죄인 호송이 이뤄지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소.” 조종사는 영장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착오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부조종사와 팔룸보씨 외에는 그 누구도 탑승하지 않았습니다.” 마티는 “착오는 무슨”이라는 대답과 함께 조종사를 밀치며 기내로 들어섰다. “스위스 영토에서는 범죄인 특별송환을 인정하지 않소. 폰 다니켄 경감, 기내 수색을 실시하게.” 폰 다니켄은 기내 통로를 걸어 들어갔다. 널찍한 가죽 시트에 승객 한 명이 혼자 앉아 있었다. 마흔 살쯤으로 보이는 백인 남성으로 삭발에 가까운 머리와 다부지고 넓은 어깨에다 냉정해 보이는 회색빛 눈을 가지고 있었다. 첫눈에 보기에도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노련함이 엿보였다. 비행기를 에워싸고 있는 돌격대의 모습이 남자가 앉은 좌석의 창을 통해서도 또렷하게 보였다. 남자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폰 다니켄은 듣기 좋은 영국식 발음의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당신이 팔룸보씨요?” “그렇게 묻는 그쪽은?” 폰 다니켄은 자신을 소개하며 신분증을 제시했다. “당신이 왈리드 가싼이라는 죄수를 이송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내 말이 맞습니까?”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답한 팔룸보는 두 다리를 꼬며 자세를 고쳐 앉았고, 폰 다니켄의 시선은 그가 신고 있는 앞코가 단단한 부츠로 옮겨갔다. “기체를 좀 수색해도 되겠습니까?” “여긴 스위스 영토 아니오. 마음대로 하시오.” 폰 다니켄은 그 승객에게 수색이 끝날 동안 자리를 지켜달라는 부탁 아닌 지시를 한 다음 뒤쪽으로 갔다. 접시와 잔이 주방 싱크대에 쌓여 있었다. 모두 네 세트였다. 기장과 부기장, 그리고 팔룸보. 누군가가 더 있었다는 말이다. 화장실 수색을 마치고 다시 뒤로 가서 해치를 열고 수화물 칸을 조사했다. “없습니다.” 폰 다니켄은 마티에게 무전을 보냈다. “아무도 없습니다. 객실과 화물칸, 모두 이상 없습니다.” “이상이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마티가 말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여행 가방에 숨긴 게 아닌 이상 우리가 찾는 자는 이 항공기 안에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계속 수색해.” 폰 다니켄은 화물칸과 빈 객실을 다시 뒤져 보았다. 아무 것도 나오지 않자 앞쪽 문을 닫고 승객 칸으로 되돌아왔다. “몽땅 다 뒤져 봤는가?” 조종사 옆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던 마티가 물었다. “아래위로 샅샅이 뒤졌습니다만 팔룸보 요원 외 다른 탑승객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게 말이 되는가.” 마티는 힐난하듯 폰 다니켄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 비행기에 죄수가 탑승하고 있단 증거도 있잖은가.” “증거라니요, 무슨 증거죠?” 팔룸보가 물었다. “장난 칠 때가 아니오.” 마티가 이렇게 대꾸했다. “우린 당신이 누군지, 또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도 다 알고 있소.” “알고 있다,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이쯤에서 말씀을 드려도 되겠군요?”“뭘 말한다는 거요?” 마티가 물었다. “당신들이 찾고 있는 그 남자를 불과 30분 전 당신네 영토의 높은 산 위에다 떨어뜨려 주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늘 알프스에 가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길래.” 마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정말로?”“엔진에 이상이 생긴 게 그 때문인지도 모르죠. 그것도 아니라면 거위 때문이었나?” 팔룸보는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창밖을 응시했다. 폰 다니켄이 법무장관 앞에 나서며 말했다. “장관님, 우리가 입수한 정보가 틀렸던 것 같습니다. 죄수는 없습니다.” 마티는 화가 치민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두 어깨가 격하게 떨렸다. 그는 승객에게 인사 대신 고갯짓을 해 보이고는 곧바로 항공기 밖으로 걸어 나왔다. 특공대원 한 명만 출입문을 지키고 서 있었다. 폰 다니켄은 그에게 손을 흔들어 내보냈다. 그 대원이 계단 아래로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폰 다니켄은 다시 팔룸보에게 돌아섰다. “우리 전문가들이 가능한 한 지체 없이 엔진을 수리해 드릴 것입니다. 날씨 때문에 공항이 계속 폐쇄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길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로슬리란 이름의 호텔이 있습니다. 나름 쾌적한 곳입니다. 불편을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사과는 받아들이겠습니다.” 팔룸보가 대답했다. “그나저나. 이걸 바닥에서 주웠습니다.” 폰 다니켄은 이렇게 말하며 그 미국 중앙정보부 CIA 요원에게 다가가 작고 단단한 물질을 손에 쥐어 주었다. “혹시 우리 측에서도 관심을 보일만한 정보가 있다면 부디 협조를 아끼지 말아 주십시오.” 폰 다니켄이 나가자 팔룸보는 꽉 쥐었던 손을 폈다. 손 안에는 피 묻은 엄지손톱이 쥐어져 있었다. 3“아내가 안 보여.”조나단은 로만의 길 아래서 200미터 떨어진 산등성이 위에 서 있었다. 바람이 불규칙하게 울부짖으며 불어 닥쳐 백시현상이 일어나 잠시 앞이 캄캄해지는가 싶더니 점차 사그라졌다. 쌍안경을 들어 눈으로 가져갔다. 스키를 이용해 십자 모양으로 표시해 둔 지점이 눈에 들어왔고 펄럭이는 구급용 담요에서 ‘헬프’라는 글자도 보였다. 왼편으로 조금 더 움직여 보니 오렌지색 안전 눈삽도 있는데 엠마만 보이지 않았다. 세 명의 다보스 구조대원들을 뒤로 하고 조나단은 산등성이까지 올라갔다. 구조요청을 하러 스키를 타고 산을 내려갔던 게 벌써 네 시간 전의 일이다. 십자로 놓인 스키 바인딩과 아내의 배낭 일부만이 쌓인 눈 사이로 보였다. 배낭을 열어 보고 샌드위치와 에너지 바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보온병도 비어 있었다. 그는 가방을 힘없이 떨어뜨렸다. 엠마가 누웠던 자리의 자국이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자리를 옮긴 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어깨에 두른 비콘을 작동시킨 다음 전 방위로 한 바퀴 몸을 돌렸다. 비콘에는 100미터까지 감지할 수 있는 자동유도장치가 장착되어 있었다. 장비에서 삐-하고 초기 작동을 알리는 소리가 나더니 곧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인디언 북소리처럼 쿵쿵 하며 나는 눈 다져지는 소리만이 산허리를 감돌고 있었다. “신호가 좀 잡히나요?” 곁에 다가온 구조대장 세프 스타이너가 물었다. 작은 키에 왜소한 편인 스타이너는 두 뺨이 움푹 들어가고 눈가에는 기다란 흉터가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아무 소리도요.” 그때 눈 위에 핀 진홍빛 꽃잎 같은 게 눈에 뜨였다. 조나단은 몸을 숙여 핏자국을 만져 봤다. 멀지 않은 거리에 핏자국이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또 자국이 하나 더 보였다. “이쪽이요.”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더 이상 가면 안돼요.” 스타이너가 이렇게 경고했다. “몇 미터 안 가 크레바스가 있습니다.” “크레바스라고요?” “꽤 깊은 놈입니다. 빙하 밑바닥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조나단은 눈을 가늘게 뜨고 갈라진 암벽의 틈을 관찰해 봤지만 하얀 벽 뒤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로프를 좀 갖다 주세요.” 그는 암벽을 타기 위해 스키 장비를 벗고 하단 벨트를 착용한 다음 로프를 허리에 맸다. “조심하세요.” 스타이너도 스키를 벗어던지고 자기 벨트로 조나단을 지탱하며 말했다. “당신까지 잃을 순 없습니다.” 조나단은 몸을 돌려 작은 체구의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아내를 잃은 게 아닙니다.” 바늘로 콕콕 찌른 것처럼 나 있는 미세한 핏자국을 추적하는 일이 처음엔 쉽지 않았다. 곧이어 핏방울이 굵어지고 나타나는 빈도수도 잦아지더니 나중에는 아예 한 줄로 쭉 뻗은 핏자국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석류 시럽이 든 캔에 구멍을 내서 눈 위에 죽 부은 것 같았다. 문제는 이게 석류 시럽이 아니라 산소를 함유한 동맥혈이라는 점이었다. 조나단은 아내가 여길 지나간 시점이 궁금했다. 5분 전? 아니면 10분쯤 됐나? 몸을 좀 더 수그리고 살펴보니 다치지 않은 쪽 다리의 발자국과 부상당한 다리를 질질 끌며 걸은 흔적이 보였다. 바로 그때 오목하게 솟은 눈 언덕이 보이고 언덕 한가운데 깊은 구덩이가 있었다. 그는 배를 바닥에 댄 채 몸을 구덩이 입구로 밀어 넣은 다음 안으로 손전등을 비추었다. 폭이 10미터는 됨직하고 빙하와 암석으로 이뤄진 바닥이 보이지 않는 통로가 손짓하고 있었다. 몸을 한쪽으로 기울여 호밍 비컨을 확인해 보았다. 숫자판이 깜빡이더니 98이란 수치가 떴다. 98미터라면 300피트가 조금 넘는 거리다. 배의 힘이 풀렸다. “신호가 좀 잡히나요?” 스타이너가 물었다.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까?” “예”라고 대답은 했지만, 그 역시 확신을 가지고 한 말은 아니었다. “내려가 볼게요. 온 빌레이.” 조나단은 곧바로 내려갈 자세를 취하며 이렇게 말했다.“빌레이 온.” 스타이너가 대답했다. 얼음도끼로 입구를 좀 더 넓혔다. 눈 한 무더기가 입을 쫙 벌리고 있는 크레바스의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먼저 부츠 신은 다리를 흔들어 넣은 다음 몸을 계속 움직이며 가슴께까지 밀어 넣었다. 어둠 속으로 떨어지며 몸이 얼음벽에 부딪혔고 안전 로프가 팽팽해지며 몸을 잡아 주었다. “들어왔습니다.” 발로 벽을 밀치고 손으로 로프를 조정하면서 점점 더 깊이 내려갔다. 손전등을 비추자 얼음여왕이 머무는 영원의 궁전처럼 천연 요새가 자태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이자 착각이었다. 크레바스는 아래 깔린 암석 지층이 지속적으로 휘돌아가는 힘에 의해 넓어지기도 좁아지기도 하며 계속 변하는 유동적인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다.10미터 아래쪽에 검은색과 흰색 무늬의 물건이 암석의 뾰족한 부분에 걸려 있는 게 포착됐다. 엠마의 캡 모자였다. 그는 시계추처럼 몸을 앞뒤로 흔들면서 얼음벽에 몸을 튕겨 반동을 시도했다. 세 번째 시도에서야 아슬아슬하게 몸을 수평에 가깝게 기울여 팔을 뻗어 그 물체를 움켜잡았다. 그는 캡 모자를 손에 든 채 몸을 고정시키면서 암석이 있는 곳을 향해 손전등을 비췄다. 암석 위에 쌓인 눈이 혈액과 엉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이번 경우에는 포도송이만한 핏자국만 보일 뿐 사람이 지나간 흔적 같은 건 없었다. 더 이상 자신을 속일 수가 없었다.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너무나 확연했다. 엠마는 혼자 산을 내려가려고 했고, 움직이는 와중에 부러진 뼈가 대퇴동맥에 손상을 입힌 것이었다. 그 동맥은 심장에서 보낸 혈액을 하체 말단부, 즉 다리에서 발끝까지 보내는 주요 통로이다. 외과의사인 그는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지혈대가 없으면 몇 분도 채 안 되어 과다출혈로 사망했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죽는 것이다. 비컨을 확인했다. 89미터. 방향지시기가 아래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크레바스 밑바닥을 향해 전등을 비춰 봤다. 그곳은 망각의 세계였다. “로프를 더 내려 봐요.” 그가 외쳤다. “로프 여분이 25미터밖에 안 남았어요. 그게 전부라고요.” 위를 흘깃 올려다보니 내려온 틈새 입구가 밤하늘에 난 작은 구멍처럼 밝게 드러나 보였다. 여분의 줄을 묶은 다음 몸이 한 차례 출렁 하고 다시 하강을 시작했다. 천천히 줄을 풀면서 10피트 마다 멈춰 주위에 등을 비춰 장애물을 살피며 엠마를 찾아보았다. 비컨의 숫자가 점점 내려갔다. 85. 80. 75. 머리 위 세상으로부터 빛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얼음벽이 희미하게 푸른색으로 빛났다. 갑자기 밧줄이 팽팽해졌다.“이게 전부입니다.” 스타이너가 소리쳤다. 조나단은 손전등의 옅은 빛줄기로 빙하에 색을 입히듯이 천천히 주변을 비추었다. 붉은색의 정체 모를 물체가 보였다. 아내에게 벗어준 패트롤 재킷인가? 몇 인치 왼쪽을 비춰 보니 구릿빛으로 반짝이는 가는 물체 한 가닥이 보였다. 엠마의 머리카락?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로프를 더 내려 줘요. 조금만 더.” “더 이상 없어요.”“조금만 더 내려요.” 명령하듯 소리쳤다. “그럴 시간이 없어요. 작은 눈사태가 막 우리 뒤편 능선을 날려 버렸어요. 산 전체가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릅니다.” 빛줄기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빨간 조각이 시야에 들어왔다. 손전등을 1인치 정도 오른쪽으로 옮겼다. 그가 벗어준 재킷에 있는 십자문양이었다. 구릿빛으로 반짝이던 것은 바로 아내의 머리카락이었다. ‘엠마’ 하고 불러 보았지만 그 소리는 목이 메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내의 윤곽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엎드려 있었고, 한 팔을 마치 도움을 요청하듯 머리 위로 뻗어 있었다. 일이 크게 벌어지고 말았다. 그녀 주변의 빙하는 하얀색이 아닌 어두운 색을 띄고 있었다. 아내는 자신이 흘린 피가 고인 웅덩이 위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아내가 있어요. 아내 있는 곳까지 내려갈 수 있어요.” “당신 아내는 100미터 높이에서 떨어졌습니다.” 스타이너가 말렸다. “아직 살아 있을 리가 없습니다. 어서 나오세요. 우리 네 사람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됩니다.” “엠마!” 조나단은 큰 소리로 외쳤다. “여보, 나야. 조나단. 아직 정신이 있으면 손이라도 움직여 봐.” 아내의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암벽 틈 사이로 그의 목소리만 메아리쳤다. “소리 지르지 말아요.” 놀란 목소리로 스타이너가 말했다. “우리까지 죄다 죽일 생각입니까.” 로프를 확 낚아채는 느낌이 들었다. 잡아당기는 게 느껴졌다. 조나단은 벽을 발로 차서 디디며 중심을 잡았다. 스타이너가 그를 힘껏 끌어올리고 있었다. 격분한 그는 신발 스파이크를 얼음에 꽂아 넣은 다음 칼을 꺼내 얼굴에서 몇 인치 위쪽 밧줄에 칼날을 갖다 댔다. 아이젠이 있고 얼음도끼도 있으니 혼자 힘으로 아내가 있는 곳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내의 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내는 이미 점점 작아 보이기 시작했고 심지어 낯설게까지 느껴졌다. 아무런 움직임이나 미동도 포착되질 않았다. 그 높이에서 떨어지면 살기 어렵다고 한 스타이너의 말이 사실이건 말건, 떨어진 높이가 너무 높건 말건, 또 그녀가 떨어지는 속도를 늦춰 주었을지도 모르는 장애물들이 중간에 있건 말건 중요치 않았다. 무엇보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게 문제였다. 조나단은 칼을 로프에서 떼고 아이젠을 얼음에서 빼냈다. 생명줄이 다시 팽팽해지며 그를 끌어올렸다. 자기가 본 붉은 천 조각을 다시 비춰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아내의 모습은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었다. “엠마!” 이렇게 외치는 그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아내의 대답 대신 그의 목소리만 몇 번이나 메아리쳐 돌아올 뿐이었다. 4랜드로버 한 대가 취리히를 지나 제스트라쎄 호변을 맹렬히 달려가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남자는 턱수염이 까칠하게 자라고 눈가엔 검은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24시간 내내 쉬지도 못한 그는 식사와 샤워, 그리고 수면이 필요했다. 일단 처리해야 할 일을 끝내면 쉴 수 있을 것이었다. 남자는 조수석 사물함 박스를 열고 소음기가 장착된 소총을 꺼낸 다음 옆 좌석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창밖의 호수를 내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하얀 파도가 출렁이고 멀리 떠 있는 큰 배의 불빛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배를 타기 좋은 밤은 아니었다. 다음 신호에서 차를 돌린 다음 좁고 구불구불한 길로 들어섰다. 헤드라이트 불빛을 집어삼킬 기세로 눈발이 날리고 있었지만 그는 속력을 줄일 생각을 안 했다. 미리 차로 한 번 답사를 해놓았기 때문에 가는 길은 알고 있었다. 지도를 보며 진입로와 탈출로를 모두 머릿속에 담아놓았던 것이다. 한번 힘차게 가속하더니 높은 언덕 위로 올라섰다. 큰길 양쪽으로 대저택들이 반듯하게 들어서 있었다. 취리히 동부에 위치한 그곳은 호화 주택이 즐비한 부촌이었다. 사람들은 이 동네가 새벽녘부터 저녁까지 해가 비치는 곳이라고 해서 ‘골드 코스트’라고 불렀다. 물론 부촌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불리기도 했다. 남자는 타깃이 사는 저택을 보자 곧바로 속력을 줄였다. 길가에서 약간 떨어진 언덕배기에 있는 프랑스 시골풍 집이었고, 양 옆으로는 눈이 수북이 쌓인 과수원과 맞닿아 있었다. 20미터쯤 떨어진 위치에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남자는 소나무 아래 그늘진 곳에 차를 세웠다. 라이트를 끄고 자리에 앉아 엔진 꺼지는 소리와 바람이 차창에 부대끼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재킷에서 순은제 케이스를 꺼내들었다. 안에는 탄환 네 알이 들어 있었다. 구릿빛 탄두에 X자가 새겨져 있는 길쭉한 탄환이었다. 그는 테이프를 감은 손가락으로 집어 탄환을 중앙 콘솔 박스에 일렬로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목에 걸고 있는 작은 도자기병 뚜껑을 열었다. 이어서 고대 언어로 나지막이 기도문을 읊조렸다. 그는 지금까지 300명이 넘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죽음의 세계로 보냈다. 기도문을 읊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자기 손에 죽은 영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청부살인업자 경력 20년에 어느덧 그는 미신을 숭배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총알을 하나씩 물약이 든 도자기 병에 담가 끈적거리고 쓴 냄새가 나는 액체를 묻혔다. 기도문으로 시작해서 액체로 마무리하는 것은 일종의 의식이었다. 전문가인 그는 조심은 아무리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았다. 이승에서든 저승에서든 마찬가지였다. 그는 탄환 하나하나에 숨결을 불어넣은 다음 탄창에 장착했다. 의식이 끝나자 권총을 집고 탄창을 밀어 넣어 장전했다. 안전장치가 잠겨 있는지 확인하고 반대쪽 주머니에서 빳빳한 무명 주머니를 꺼내 탄피 배출구 윗부분에 부착했다. 그런 다음 차에서 내렸다. 예리한 시선으로 집 앞길을 위에서 아래까지 훑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날씨조차 그의 편이었다. 목표물의 집 주변에는 개미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았다. 시간은 9시 30분. 일대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그는 코트 단추를 채우며 빠른 걸음으로 길을 나섰다. 평균키에 좁은 어깨, 그리고 옷깃에 닿을 정도 길이의 차분한 검은머리를 늘어뜨린 외모는 겉으로 보기에 평범하고 단정했다. 안색은 파리할 정도로 창백하고, 움푹한 뺨에 얇은 콧대가 귀족적인 분위기를 주었다. 멀리서 보면 걷는다기보다는 길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것 같았다. 시체처럼 창백한 안색과 날렵하고 조용한 움직임 때문에 그는 고스트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목표물의 집 앞을 지나면서 보니 현관 옆 창문으로 집 안이 훤히 다 들여다보였다. 거실에 있는 긴 소파에 나란히 앉은 여자 한 명과 아이 셋이 텔레비전에서 하는 저녁 프로그램에 한창 빠져 있었다. 자기처럼 검은 머리에 창백한 얼굴을 한 사내아이가 보였다. 막내로 보이는 사내아이는 팔을 엄마 몸에 두른 채 안겨 있었다. 그 모든 장면들이 샅샅이 보일 정도로 고스트는 느리게 걸었다.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눈동자 저 뒤편의 기억들이 마치 갇힌 창문에 몸을 부딪는 작은 새처럼 파닥거리며 날갯짓을 했다. 그는 눈길을 돌려 버렸다. 차량이 양방향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한 줄짜리 와이어 울타리를 뛰어넘어 타깃의 집 옆에 쌓여 있는 장작더미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는 눈 속에 웅크린 채 기다렸다. 리더가 되어 본 적은 없지만 한때는 그도 팀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외부에서 식사 중인 타깃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2인 1조로 구성된 감시조와 타깃의 집까지 따라갈 차량, 그리고 저격수를 가장 가까운 공항이나 기차역으로 데려가 신속하게 해외로 도피시켜 줄 처리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게 바로 표준 절차였다. 하지만 그는 지금의 이 방식을 더 선호했다. 그는 홀로 어둠속에서 움직이는 죽음의 사자였다. 남자는 겉옷 주머니에서 금속 박스를 꺼내들어 스위치를 켠 다음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금속 박스는 차고의 자동문이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 전파를 송출하고 있었다. 목표물은 어쩔 수 없이 차 밖으로 나와 차고 문을 수동으로 열거나, 아니면 옆문을 통해 차고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열려고 할 것이다. 멀리서 강력한 엔진이 부드럽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주머니에서 소음기 달린 권총을 꺼내 길을 주시하면서 타깃이 탄 아우디 신형 A8 모델이 언덕 위로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렸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점점 또렷해지자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안전장치를 풀었다. 목표물이 탄 차가 가로등 밑을 지날 때 차량 모델과 번호판을 확인했다. 차가 속력을 늦추면서 도로에서 벗어나 차고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타깃이 차 밖으로 나왔다. 큰 키에 탄탄한 체격, 연한 적갈색 머리에 건강해 보이는 혈색의 남자였다. 기계공학 전문가다운 풍모의 그는 가정적이고 철저한 원칙주의자였다. 고스트가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서너 번의 가벼운 몸놀림만으로도 금세 사정거리까지 접근했다. 남자는 그를 보며 당황스러워했다. 차고 문은 왜 작동이 안 되지? 난데없이 불쑥 나타난 이 낯선 남자는 누구지? 고스트는 타깃의 눈빛을 통해 그런 감정을 읽고는 손을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정확히 머리를 겨냥해 세 발. 탄피는 무명 주머니 안으로 날아 들어가고, 타깃은 쓰러졌다. 고스트는 죽은 자를 향해 몸을 숙였다.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을 타깃의 심장에 가까이 댔다. 타깃의 몸이 풀썩 하고 뛰었다. 그때였다. 죽은 자의 옷깃에 기이한 모양의 물체가 붙어 있었다. 옷핀처럼 생긴 물체였다.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약간 수그렸다. 나비였다. 5마르커스 폰 다니켄은 밤 11시가 약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손에는 꽃가게 포장지로 싼 긴 줄기의 장미 두 송이가 들려 있었다. 그는 어두운 복도를 지나 조명등이 켜 있는 부엌으로 향했다. 꽃을 내려놓은 다음 권총과 지갑을 카운터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는 하품이 나는 걸 억지로 참으며 냉장고를 열어 맥주 한 병을 꺼냈다. 싱크대 위에 햄 샌드위치, 포테이토 샐러드, 그리고 레몬타르트가 놓여 있었다. 전부 랩으로 정성스레 싸놓았다. 남은 음식은 냉장고에 보관해 달라는 가정부의 메모와 함께. 의자에 재킷을 걸쳐 두고 팔소매를 걷은 다음 싱크대에서 손을 씻었다. 그리고 샌드위치를 먹은 다음 포테이토 샐러드, 레몬타르트는 손도 대지 않고 가정부가 요구한대로 냉장고에 잘 넣어두었다. 폰 다니켄은 베른 외곽에 위치한 언덕 위의 거대한 샬레에서 홀로 지냈다. 혼자 살기엔 너무 큰 집이었다. 이 집은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 이렇게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집이다. 굳이 혼자 살길 바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누리는 이 고요한 삶이 싫은 것도 아니었다. 여러 해 동안 그는 텅 빈 복도의 울림, 음울한 침묵, 그리고 항상 불이 켜져 있는 빈 방들을 벗 삼아 살아 왔다. 테이블로 돌아서서 포장지를 풀고 안에 든 장미를 꺼내 들었다. 조심스레 줄기를 다듬어 신혼 여행지였던 무라노의 한 유리 공방에서 산 수제화병에 장미를 꽂았다. 그도 결혼을 한 적이 있다. 단 한 번. 딸애가 한 명 있었고 곧 태어날 아이도 있었다. 그때는 이 집도 지금처럼 넓게 느껴지지 않았다. 결혼하자마자 아내는 집을 팔자고 졸랐다. 제네바 출신의 변호사였던 그녀는 활달하면서도 충동적이고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여성이었다. 아내는 집이 지어질 당시의 사회 분위기처럼 지독히 보수적이고 딱딱한 느낌을 주는 낡은 흉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내의 생각에 찬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이견을 좁힐 기회도 미처 가져 보지 못했다. 폰 다니켄은 거실등을 켰다. 벽난로 위에는 아내와 딸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금발머리의 두 여자 마리프랑스와 스테파니. 그는 15년 전에 일어난 항공기 사고로 두 사람을 한꺼번에 잃고 말았다. 그는 어제 산 장미를 치우고 새로 사온 장미를 꽂은 다음 낡은 안락의자에 앉아 남은 맥주를 마저 마셨다. 리모컨을 들고 텔레비전을 켰다. 다행스럽게도 뉴스에는 오늘 오후 불발에 그친 체포사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채널을 돌려 프랑스 문학 관련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했다. 문학이나 프랑스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었다. 다만 사회자가 다갈색 머리의 중년 여성인데, 그녀의 우아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텔레비전 소리를 줄이고 그녀를 응시했다. 완벽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텔레비전 세계는 현실 세계보다 안전하다. 지난 몇 년간 셀 수 없을 정도로 여러 번의 소개팅을 해 봤다. 몇몇 여성과는 한 번 더 만남도 가져도 보았고, 그 중 두 명과는 만남을 지속해 보려고도 했지만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두 여인 모두 매력적이고 똑똑했으며 침대 위에서도 잘 맞았다. 그러나 둘 다 아내를 대신하지는 못했고, 그런 사실을 깨닫자 관계는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데이트 횟수는 점점 뜸해지고, 맡은 사건을 핑계로 갑작스레 데이트를 취소하는 일도 잦아졌다. 두 여인 다 금세 눈치를 챘다. 그런 여성들과의 헤어짐은 씁쓸하고,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고통스러웠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예?” “취리히 주 경찰 소속 위드머입니다. 사건이 터졌습니다. 에를렌바흐에서 살인사건입니다. 골드 코스트 지역입니다. 전문가의 소행으로 보입니다.” 폰 다니켄은 소파에서 일어나 텔레비전을 끄며 이렇게 내뱉었다. “왜 이쪽으로 연락하지? 강력계에서 맡을 사건 같은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미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부엌으로 가 차가운 맥주를 싱크대에 부어 버린 다음 권총집을 허리에 차고 재킷을 걸친 다음 지갑을 챙겼다. “ISIS 파일에 희생자의 신상기록이 올라 있습니다.” 위드머가 이렇게 설명했다. “기밀로 분류된 파일인데, 이 자가 지난 20년간 감시대상자라는 기록만 첨부되어 있습니다.” ISIS는 국가보안정보시스템의 약자로 5만 명이 넘는 개인정보를 담고 있는 연방경찰 데이터베이스를 가리킨다. 여기서 개인이란 테러리스트, 극단주의자, 그리고 적국이건 우방이건 상관없이 스파이로 의심되는 각종 정보국 요원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 행운의 사나이가 누구지?” 폰 다니켄은 자동차 열쇠를 집으며 이렇게 물었다. “이름은 라머즈. 네덜란드인입니다. 스위스 영주권자로 여기서 15년을 살았습니다.” 위드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어서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90분 안에 도착하겠네.” 폰 다니켄이 110킬로미터 거리를 가는데 걸린 시간은 정확히 85분이었다. 차에서 내려 얼어붙은 인도를 조심스레 걸어가 사건 현장 테이프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숙여 들어갔다. 경관 한 명이 폰 다니켄을 보더니 인사했다. “어서오십시오, 경감님.” 폰 다니켄은 그의 등을 두드려 주며 물었다. “위드머 반장은 어디 계신가.” “저 위쪽에 계십니다.” 경관은 차고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폰 다니켄은 범죄 현장 주위를 에워싼 이동식 조명 배터리가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1000와트짜리 전구가 죽은 자의 몸을 비추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생트로뻬의 타히티 해수욕장에서 선탠을 즐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폰 다니켄은 사체를 힐끗 본 다음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실력 꽤나 갖춘 자의 소행이군.”사체 옆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있던 어깨가 넓은 대머리 남자가 폰 다니켄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머리에 세 발, 가슴 부위에 한 발 맞았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취리히 주 경찰 소속 강력반장인 월터 위드머였다. “소형 구경입니다. 상처로 보아 덤덤탄을 사용했습니다. 어떤 놈인지 현장에 흔적 하나 남기지 않았습니다.” “살해당한 것이라고 믿는다는 말이지?” “탄피도 없고 목격자도 없습니다.” 위드머가 얼굴을 찡그리며 일어섰다. “우리 추측으로는 살인범이 고의로 차고 문에 일시적 장애를 일으켜 희생자가 차량 밖으로 나오게끔 유도한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보십니까?” 폰 다니켄은 길가로 급히 되돌아가 보았다. 엉망이 된 희생자의 모습이 적어도 며칠간은 뇌리에 남아 있을 것 같았다. 마르커스 폰 다니켄은 강력계 형사가 아니고, 강력범죄를 다뤄 본 경험도 별로 많지 않았다. 그는 다른 분야의 일을 주로 해 왔다. 4년간 보병장교로 근무했고, 그 다음에는 연방경찰 금융범죄과에 합류했다. 빠른 승진과는 거리가 먼 보직이었다. 소위 스위스 은행들의 성삼위일체라 부르는 사기, 화폐위조, 돈세탁 관련 범죄를 파헤치는 수사관으로 몇 년 활동하다가 10년 전에 큰 기회를 잡았다. 나치 희생자 자산을 관리하는 스위스 정부 대책위에 연방경찰 대표로 간 것이었다. 자국의 은행계 거물, 몇몇 다른 나라 외교관들,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수많은 피해자 단체의 대표들과 협력하며 그는 스위스 정부, 스위스의 국내은행, 세계유대인총회, 백악관, 독일 중앙정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해당 사건 피해 당사자들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분야의 이해 당사자들이 모두 받아들일 만한 해결안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 보상으로 그는 연방경찰청 내 엘리트 부서로 알려진 정보분석보안국으로 발령을 받은 것이다. “희생자의 아내는 뭐라고 하나?” 그가 차고 너머 보이는 저택 창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뭔가 본 게 있다고 하던가?” 위드머가 고개를 저었다. “그쪽도 쉽지 않았습니다. 앵무새 같은 여자입니다. 일이 있어났을 시간에 아이들과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는 말만 합니다. 차가 멈추는 것을 보았는데 차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남편을 찾아 밖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거기에 걸린 시간이 고작 2분이었다는 말을 강조하더군요. 통상 하는 질문은 모두 물어 보았습니다. ‘남편에게 적이 있었느냐?’ ‘남편이 최근에 협박 같은 걸 받은 적은 없었느냐?’ ‘최근 며칠간 평소와 다른 일은 없었느냐?’ 그 여자 말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군요.” “그 여자가 하는 말을 믿나?” “난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위드머가 대답했다. “어쩌면 라머즈와 킬러가 서로 아는 사이였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자기 손으로 차고 문을 열었던 건 아닐까? 서로 잠깐 보기로 미리 사전에 약속을 했던 건 아닐까? “글쎄요. 장작더미 옆에 발자국이 있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살인자는 희생자가 오길 기다리며 그곳에 잠복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시는 길에 잡아낸 게 있으십니까?” “벨기에 경찰에서 1987년 브뤼셀에서 라머즈를 일주일간 감시한 적이 있다는 정도. 그자가 스위스로 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들이 갖고 있던 파일을 우리한테 넘긴 거지. 우린 그 자료를 ISIS 데이터베이스에 올린 거고. 몇 가지 더 있는 것도 같지만 보존 파일들이라 내일 아침까지는 접근이 힘드네. 내가 지금 자네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거라고는 이 자가 취리히로 거처를 옮겼고, 그 후로는 준법정신이 투철한 주민 행세를 해왔다는 걸세. 탈세를 한 적도 없고,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다는 군. ISIS에는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 넘쳐나지. 알잖아. 요주의 인물로만 남아 있는 놈들.”“의심스러운 자인 건 확실합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보시죠.” 위드머가 차고에서 그를 안내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에서 곧바로 계단을 내려가 몇 개의 방 있는 곳으로 갔다. “저희 팀원 한 명이 화장실을 좀 쓰자고 했더니 이 집 부인이 흙먼지가 집 안에 들어오지 않게 가급적 아래층을 사용해 달라는 부탁을 하더랍니다. 아래층에서 그 요원이 화장실인 줄 알고 이 작업실로 들어갔답니다.” 화장실은 문이 열려 있고 전등도 켜져 있었다. 폰 다니켄은 그 화장실을 지나 복도를 계속 따라 내려갔다. “왜 그런 실수를 했는지 이해가 가는 군.” 위드머가 복도 맨 끝에 있는 방의 전등 스위치를 올리자 온통 스테인리스 스틸로 꾸며진 작업실이 나왔는데, 안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스테인리스 작업 벤치에 스테인리스 받침까지 모든 게 공장에서 갓 만든 제품처럼 번쩍이고 있었다. 어설프게 주말 여가시간이나 보내려고 만든 방이 아닌 게 분명했다. 톱이나 망치 같은 공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방주인이 전문 공학엔지니어임을 보여주는 각종 하이테크놀로지 장비와 도구들이 즐비했다. 근처 테이블 위엔 여권들이 가득 찬 플라스틱 봉지가 놓여 있었다. “이건 뭐지?”하고 폰 다니켄이 물었다. “저희 대원이 맨 위 서랍에서 발견한 물건입니다.” “그 친구 휴지 찾아 헤매고 다닌 게로군, 안 그런가?” 위드머는 코웃음을 치며 눈썹을 으쓱 치켜세워 보였다. 폰 다니켄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불법 수색을 한 것이다. 그렇게 찾아낸 증거물은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게 뭐 어떻다는 건가? 라머즈가 법정에 설 일도 없을 테고. “네덜란드, 벨기에, 뉴질랜드.” 그는 여권을 한 권, 한 권 넘겨보았다. “평범한 여행객이라. 당신 요원이 또 뭐 찾은 건 없나?” “캐비닛 아래를 보십시오.” 위드머가 말했다. “그걸 보면 라머즈가 자기를 노리는 적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 조심하십시오. 장전되어 있습니다.” 폰 다니켄은 무릎을 굽혀 작업용 벤치 아래쪽 공간에 머리를 밀어 넣었다. 뒤쪽 벽에는 우지 반자동 소총이 숨겨져 있었다. 그는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이 무기의 판매자가 누구인지 알아보게.” 그는 이렇게 말하고 일어서며 여권들을 집어 들었다. “이건 내가 가지고 가서 좀 봐도 되겠나?” “수령증 하나만 써 주십시오.” 위드머가 말했다. 폰 다니켄은 여권 수령증을 한 장 쓴 다음 노트에서 찢어냈다. “이거면 되겠지. 이제 자네가 라머즈 부인에게 질문할 일만 남았군. 가서 남편이 왜 다국적 소유자였는지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지 않으면, 그 여자와 세 아이는 24시간 안에 전원 추방당할 거라고 말하게. 언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을지 두고 보자고.” “그건 좀 심한 거 아닙니까?” 위드머가 이렇게 되물었다. “여자의 남편이 희생된 마당에 말입니다.” 폰 다니켄은 코트 단추를 여미며 문밖을 나섰다. “희생되었다고?” 그는 표정이 굳어지며 말했다. “여권이 세 개가 넘고, 장전된 우지 기관소총을 소지한 자라면, 그가 누구건간에 희생자라고 할 수 없어. 범죄자가 아니면 스파이겠지.” 6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였다. 조나단은 눈을 깜박여 보았다. 두 눈을 뜨고 있었지만 주변이 온통 암흑인 건 변함이 없었다. 고개를 들려고도 해 봤지만 꼼짝없이 고정된 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팔과 다리도 핀으로 고정당한 듯했다. 마치 콘크리트 속에 잠긴 듯 전신은 눈 속에 굳게 갇혀 버렸다. 손은커녕 손가락 하나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흔들림 없는 목소리가 들려와 그에게 평정을 유지하라고 일러 주었다. 예상과 달리 그다지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의아하기까지 했다. 한없이 어두울 뿐이었다. 어느 누구도 이 어둠에 대해서 충고해 주거나 언급한 적이 없었다. 숨쉬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시시각각 산소는 줄어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눈 속에 파묻혀 있다는 사실과 더 늦기 전에 누군가에 의해 구출될 확률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포가 깊은 곳에서부터 창자를 타고 스멀거리며 점점 더 빠르고 강렬하게 밀고 올라오면서 그의 자제심을 무너뜨리고, 차분한 이성의 소리를 억눌렀다. 어둠, 압력, 산소 부족, 목까지 차오르는 공포가 엄습했다. 비명을 지르며 입을 열자 오히려 쌓인 눈만 입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엠마” 하고 부르며 두 손으로 침대 위 옆자리를 더듬고 있었다. 또 꿈을 꾼 것이었다.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싶고, 어깨에 닿는 아내의 손길이 그리웠다. 방의 불을 켰다. 원래 아내가 누워 있어야 할 자리는 정돈된 채 그대로였다. 말끔한 화이트 이불 커버는 단정히 포개져 있었다. 아내가 입던 나이트셔츠의 끝자락이 배게 밑으로 힐끔 나와 있었다. 하지만 이제 아내는 없다. 온갖 감정이 서서히 다가오는 폭풍처럼 그를 엄습했다. 숨소리가 빨라지고 손가락 끝마디가 얼얼하기 시작했다. 복부를 가르는듯한 날카롭고 차가운 무언가가 느껴져 배를 웅크리며 몸을 숙였다. 그는 흐느꼈다. 아내는 이제 없다. 같은 말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얼어붙은 어둠속에 홀로 남은 채 누워 있던 그녀. 그 장면이 그를 너무도 괴롭혔다. 가까스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숨소리가 차츰 느려지고 공포가 지나갔다. 그러나 이런 순간이 영원히 사라진 게 아니란 걸 그는 알았다. 주위를 맴돌며 때가 되면 다시 나타날 것이었다. 그는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여전히 많은 눈이 내리고, 음울한 색조 덕에 장엄한 느낌마저 주는 구름이 펼쳐진 새벽하늘은 옅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창밖에는 군데군데 오두막이 자리한 완만한 언덕이 펼쳐져 있었다. 반마일 더 뒤로는 마을을 품고 있는 산봉우리의 능선을 따라 푸른 숲이 펼쳐져 있었다. 발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차가운 날씨로 인해 공기가 더 상쾌하게 느껴졌다. 난간에 서서 어제의 루트를 더듬어 보았다. 두 눈은 길을 따라 구름과 안개를 뚫고, 산 깊숙한 곳을 지나 푸르가의 눈 덮인 정상까지 쫓아갔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 로만의 길까지 더듬어 올라갔다. 어떤 산인지 알면서도 난 당신을 지키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하나도 하지 않았어.어떤 산인지 알면서도 당신을 홀로 산 위에 남겨 두었어.어떤 산인지 알면서도 산이 당신을 죽이도록 내버려 두었어.추위에 가누기 힘들 정도로 몸이 떨리자 조나단은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방이 잘 정돈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놀랐다. 그녀가 없으니 방도 예전과 달라 보여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보통 때와 같을 리가 없는 지금, 이 방만은 여전히 보통 때와 같은 모습으로 있다는 사실에 배신감마저 느꼈다. 책상에 앉아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엔 자외선 차단제, 포켓 나이프, 갖가지 지도, 입술크림, 반다나 두건, 비콘, 그리고 쌍방향 무전기가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다. 그는 무전기를 집어 들고 전원을 켰다 껐다 해 보았다. 작동되지 않았다.전선…전선이 끊어져 있었다. 산에서 돌아온 조나단은 경찰서로 출두 요청을 받았고, 그곳에서 의사의 검진을 받은 다음 질문 세례를 받았다. 본명 조나단 호바트 랜섬. 출생지 미국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 직업 외과전문의. 소속 국경 없는 의사회. 국적 미국인. 거주지 제네바. 이어서 엠마와 관련된 질문에도 대답해야 했다. 출생지 잉글랜드 펜잰스. 부모 모두 사망. 가족관계 여동생 한 명. 여동생 이름 베아트리스. 직업 간호사 관리직. 지나치게 양심적이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던 여자. 아내이자 최고의 친구. 그의 정신적 위안이었던 사람.다른 질문들도 받았는데 산악인으로서의 경험에 관한 것들이었다. 어쩌다 기상 파악을 제대로 못한 건지. 엠마가 추락 사고를 당하게 된 자초지종. 그리고 아내를 두고 나와야 했을 당시 아내가 피를 흘리고 있었는지 여부. 등산 시작 전에 무전기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도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폭풍으로 기상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등반을 계속하기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서도 질문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그것은 그녀가 내린 결정이었다. 엠마는 결코 뒤로 물러설 줄 모르는 여자였다. 무전기를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서도 그의 시선은 산자락을 헤매고 있었다. 등산에 대한 그의 남다른 열정은 아홉 살 되던 무렵 가족과 함께 간 캘리포니아 여행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의 목표는 미국 본토 48개 주에서 가장 높은 휘트니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새벽 5시에 휘트니산 입구 고도 8,500 피트 지점에서 출발해 하루 만에 1만 4,500 피트의 정상까지 22마일 왕복 코스를 주파하는 계획은 그의 형들을 위해 마련한 것이었다. 조나단과 아버지는 초반 몇 마일만 같이 오르다 멈추고, 형들이 등산을 마치고 올 때까지 챙겨온 점심이나 먹으며 송어낚시를 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때도 조나단은 독립적인 성향이 강한 아이였다. 자기 형을 우러러보는 대부분의 또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조나단도 혼자 남겨지고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매끼 식사에 칵테일 반주를 잊지 않으시던 아버지는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그는 아니었다. 4마일쯤 가자 형 네드 랜섬은 잠시 쉬며 점심을 먹자고 했지만 조나단은 막무가내로 앞으로 나아갔다. 뒤에서 다들 멈추라고 불러댔지만 들은 체도 않았다. 그 후 8마일 더 가서 정상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는 걸음을 멈췄다. 그의 형들보다 100야드나 앞서 있었다. 주사위는 그때 이미 던져졌다. 열여섯 살 때 조나단은 오로지 등산에만 관심을 가진 소년이었다. 검정고시에 합격해 놓은 덕에 고교 수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고, 대학 진학에는 관심도 없었다. 여름은 매킨리산의 가이드, 겨울엔 산악 스키 정찰요원으로 활동하며 온 산을 누비고 다녔다. 모아둔 돈은 전부 다음 원정에 써 버렸다. 아이거 북벽, 아콩카과, K2 매직라인 무산소 등정 등 굵직한 등정에 이름을 올렸다. 그저 앞만 보고 밀어붙였다. 그는 끝까지 밀어붙이다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물러섰다. 자신의 성격에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성격상 결함이란 비정상에 가까운 용맹함과 타고난 반항정신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그 때문에 툭하면 주먹질을 했다. 산악 리조트 인근의 술집들은 늘 허풍쟁이와 허접스런 인간들로 넘쳐났다. 그는 아무 상대에게나 싸움을 거는 게 아니라 꼭 무리들 중 제일 시끄러운 자를 골랐다. 마땅히 당해도 싼, 그리고 한판 잘 어우러질 수 있어 보이는 상대를 택했다. 그럴 때면 그는 신경을 알맞게 곤두세워 줄 버번위스키 샷 한 잔을 주문했다. 그 다음에는 적절히 한 마디 던지기만 하면 끝이었다. 운만 따른다면 5분도 채 안 돼 뒤편 복도로 나가 판을 벌일 수 있었다. 물불 안 가리고 싸웠고 단숨에 끝을 냈다. 영리한 싸움꾼인 그는 빠르게 상대의 약점을 간파했다. 그는 땀범벅이 돼서 엉겨 붙거나 싸움판에서 흔히 보는 어색한 레슬링 판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1~2분 정도 상대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행동에 들어갔다. 상대의 턱에 잽을 한 방 날리고 복부에 펀치 한 방, 그리고 머리에 훅 한 방. 대개는 그 정도에서 정리가 됐다. 그는 자신만의 절제된 싸움기술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물론 그도 싸움을 잘 한다는 것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자칫 자멸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지나치게 모험을 추구하는 자신의 성향 탓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누가 봐도 위험천만한 상황만 보면 달려들었고, 자신보다 덩치가 큰 상대들에게 늘 도전장을 날렸다. 그러다 싸움에서 지기 시작했고, 자신의 성격적 결함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등반을 하면서도 점점 더 큰 위험을 감수하기 시작했다. 지도에 없는 루트들을 찾아내고, 마치 굶주린 사람처럼 등반이 불가능한 곳만 찾아다녔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 오르기를 갈망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아침에 그 모든 게 사라져 버렸다. 싸움질도, 수직 화강암벽을 정복하려는 욕구도,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 위험천만한 모험을 갈망하던 습성도 그냥 사라져 버렸다. 그는 등산장비를 벽에 걸며 지난 삶에 작별을 고했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눈사태에 된통 당하더니 놀라 저런다며 수군거렸다. 너무 놀라서 기가 한풀 꺾인 거라고들 했다.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 그는 포기한 게 아니었다. 충동적인 기질을 충족시켜 줄 더 큰 도전을 발견한 것뿐이었다. 그 일은 암벽등반이 아니라 고속도로 위에서 일어났다. 스물 한 살이던 어느 날이었다. 일요일 밤이었는데 자이언 국립공원에 있는 높이 2,000피트의 붉은 암벽 엔젤스 랜딩에서 일주일 동안 자유등반을 마치고 아스펜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늘 그렇지만 산길 도로 교통사정은 끔찍했다. 낡은 포드 브랑코가 차량 몇 대를 사이에 두고 앞서 가던 대형 트레일러를 추월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 고물차는 추월을 하기엔 너무 느렸고, 반대편에서 마주오던 대형트럭과 충돌했다. 운전자는 즉사했다. 조나단이 다가갔을 때 동승했던 사람은 살아 있었다. 열네 살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소녀였다. 조나단은 소녀를 차 밖으로 끄집어내 바닥에 눕혔다. 변속기가 소녀의 가슴을 관통한 상태였고, 상처 부위에선 파열된 소화전처럼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순찰대원 훈련에서 배운 것에 겨우 의지해서, 사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게 거의 전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한쪽 주먹을 구멍에 밀어 넣고 파열된 혈관을 눌러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막았다. 그때까지 소녀는 의식을 잃지 않고 있었지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구급차가 올 때까지 소녀는 자신의 갈비뼈에 손을 파묻고 있던 그를 그냥 올려다 볼 뿐이었다. 그는 소녀의 심장 박동을 내내 느끼고 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손 밑에서 뛰고 있는 심장 자체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다시 한번 도전에 나섰다.그 다음 주에 곧바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의학을 공부하겠다며 대학에 진학한 것이다. 조나단의 생각이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창가에서 눈길을 돌리자 엠마의 나이트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가 남긴 흔적들이 그대로 있었다. 뚜껑 열린 미네랄워터, 로맨스 소설 위에 놓인 독서용 안경. 한번은 건장한 스코틀랜드 남자들이 나오는 이야기나 시간 여행을 하던 해적이 영원의 성에 갇혀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처녀를 구출해 내는 이야기에 매료되는 이유를 설명하며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장르의 소설은 스토리가 하나같이 너무 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해피엔딩이 보장된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직업에서 겪는 스트레스에 대한 일종의 해독제였다. 그녀의 직업에서는 어떤 것이든 행복하게 끝나는 법이 없고, 예상한대로 끝나는 적도 거의 없었다. 베개 틈으로 나와 있는 엔젤 블루 색상의 옷에 시선이 갔다. 침대에 앉아 아내의 나이트셔츠에 얼굴을 파묻었다. 부드럽고 익숙한 느낌의 울 잠옷에선 바닐라와 백단향 내음이 났다. 묘한 자극이 온몸을 훓고 지나갔다. 아내의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부드러운 곡선의 탄탄한 근육. 목 아래쪽에서 발산되는 온기. 쏟아져 내리는 머리카락 밑에서 보내는 수줍은 미소는 그의 욕구를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할까?” 엠마는 용기를 내듯 이 말을 천천히 읊조리곤 했다.조나단은 나이트셔츠를 무릎에 포개 놓았다. 그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와 그를 휘감았다. 물밀듯 밀려오는 강한 그리움은 점점 공포로 변해갔다.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상실감에 대한 공포였다. 그는 나이트셔츠를 보며 호흡을 진정시켰다. 아직 작별을 고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셔츠를 곱게 접어서 베개 밑에 도로 넣어두었다. 아내를 조금이라도 더 곁에 두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7정보분석보안국 본부는 베른의 누스바움 거리에 위치한 스틸과 유리로 된 현대식 건물에 있다. 스위스 정보국 요원인 이들의 총 인원은 200명 남짓 된다. 주요 임무는 정보 수집과 분석, 본국, 특히 베른에서 활동 중인 타국 정보 요원 감시, 그리고 자국 국경을 넘나드는 은밀한 교신을 감시하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 30명의 요원이 보다 활동적인 임무, 즉 스위스 영토 내에서 활동하는 소규모 테러 집단을 포함한 극단주의자들을 상시 조사하고 감독하는 일을 도맡아 했다. 이 활동은 소규모 단위로 은밀히 운영되었다. 일곱 시 정각에 사무실에 도착한 마르커스 폰 다니켄은 곧바로 업무에 돌입했다. 수화기를 들고 내선번호를 누르자 여자 음성이 흘러나왔다. “ISIS. 슈미트입니다.” 폰 다니켄은 자기 신분을 밝히고 말했다. “테오 라머즈란 자에 관해 우리가 가진 모든 정보가 필요합니다. 긴급 사항입니다.” “네, 즉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후 그의 컴퓨터 창에 새 이메일의 도착을 알리는 메모가 떴다. ISIS 파일임을 확인하자 만족스런 기분으로 파일을 열었다. 벨기에 경찰에서 넘어온 정보들을 취합한 자료들이었다. 테오도르 알브레히트 라머즈 1961년 로테르담 출생. 위트레흐트 대학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암스테르담과 헤이그 등지를 떠돌며 별 볼일 없는 민영기업을 전전함. 1987년에 와서야 그는 당국으로부터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브뤼셀에 체류하던 그가 미국인 무기 제조업자인 제럴드 불의 조수로 일했기 때문이다. 당시 제럴드 불은 사담 후세인이 의뢰한 일명 슈퍼건 제작에 한창이었다. 암호명 ‘바빌론’으로 불린 이 무기는 수백 마일 떨어진 목표물을 정확히 맞출 수 있는 거대한 고성능포였다. 중동의 독재자가 의뢰해 진행되던 그 작업은 당국의 감시 대상이었다. 그리고 테오 라머즈를 포함한 직원들도 벨기에 경찰청에 의해 ‘요주의 인물’로 분류되었다. 나머지 이야기는 폰 다니켄도 아는 내용들이었다. 제럴드 불은 1990년 브뤼셀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현관에서 매복 중이던 암살범에게 후두부에 다섯 발의 총격을 받고 살해당했다. 처음엔 그를 죽인 게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소행이라는 추측이 제기되었지만 틀린 추측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과학자들과 거리를 유지하는 동시에 협조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장래의 고객답게 불의 움직임과 동향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바로 그런 이유로 이라크 측에서 그를 살해했던 것이다. 바빌론 계획이 완성되자 사담 후세인은 불이 그 제조법을 그 어느 누구와도, 더구나 이스라엘과는 절대로 공유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폰 다니켄은 이메일 창을 닫고 창가로 걸어갔다. 낮게 깔린 구름에 축축한 진눈깨비만 내리는 회색빛의 음산한 아침이었다. 바깥에 보이는 풍경이라고는 주차장과 반쯤 짓다만 오피스 타워 건물, 그리고 그 건물을 오르내리며 궂은 날씨에도 일하는 인부들뿐이었다. 그리고 라머즈? 그자는 도대체 어떤 일을 하고 있었던 거지? 무슨 일이었기에 작업실에 우지 자동소총을 숨겨놓고 화장실에는 온갖 국적의 여권을 챙겨두었던 거지? 어떤 일을 했기에 전문 킬러가 이 자를 노린 것일까? 폰 다니켄은 다시 책상으로 돌아왔다. 여러 가지 자료가 책상 위에 놓여 있고, 자료에는 ‘공항 출입국 기록’, ‘대테러/국내’, ‘대테러/해외’, 그리고 ‘불법거래’ 등의 라벨이 붙어 있었다. 자료들을 훑어보다가 그는 ‘대테러/해외’란 라벨이 붙은 파일을 따로 보관해 두었다. 여러 해외 정보기관에서 보낸 전문을 모아놓은 것이었다. 1971년에 스위스 정보국장은 도처에서 자행되는 정치적인 동기에 의한 폭력행위의 등장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안보 확보 임무를 맡은 서유럽 내 각국 법집행 전문가들의 연합체를 결성했다. 일명 베른클럽으로 알려진 이 그룹은 9/11 테러를 계기로 모임을 공식화하고 명칭도 대테러그룹을 뜻하는 CTG로 바꾸었다. 제일 위에 놓인 보고서는 스웨덴 담당자로부터 온 것으로 극단주의자라는 혐의를 받는 왈리드 가싼이란 자가 스톡홀름에서 목격됐다고 했다. 이어서 보고서는 가싼을 요르단 암만 소재 쉐라톤호텔 폭파사건과 미수에 그친 몇몇 사건의 주요 용의자로 보고 있다고 밝히고, 가싼과 그의 공범으로 보이는 자에 관한 그 어떤 정보라도 얻는 즉시 스웨덴 정보기관에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었다. 최종 보고서는 아니지만 기재된 내용들은 정확했다. 지난 1월 왈리드 가싼은 스위스를 거쳐 갔다. 제네바의 모스크 사원에 심어놓은 정보원으로부터 첩보를 입수한 폰 다니켄은 그의 소재를 추적해 체포조를 파견했다. 스위스에서 수배된 것은 아니지만 인터폴에서 발부받은 ‘레드 플래그 영장’에 따라 폰 다니켄은 가싼을 검거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운명은 가싼의 편이었다. 그자는 폰 다니켄이 겨우 소재를 파악하고 체포 경보를 발령했을 때 이미 스위스 국경을 빠져나갔다. 그는 비행기 안에서 발견했던 손톱을 생각했다. 어쩌면 가싼의 움직임에 대해 그가 만든 보고들이 체포에 기여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자가 스톡홀름의 거리에서 잡힌 것인지, 아니면 유럽의 다른 도시에서 잡힌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가싼의 처리는 CIA 특수제거팀 팀장인 필립 팔룸보에게 맡겨두는 편이 더 낫겠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폰 다니켄은 2층으로 걸어 내려가 차가운 회색 카펫이 깔린 복도를 지나 오른쪽 맨 마지막에 위치한 사무실 문을 향해 갔다. 사무실 문에는 ‘KILA 2.8’이라는 문패가 붙어 있었다. KILA는 신원서류 조사과로 세계 각국에서 수집되는 신원서류들을 보관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방대한 수의 캐비닛 어딘 가에는 전 세계 200개국 이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모든 종류의 여권, 운전면허증, 출생증명서가 최소한 한 개씩은 들어 있었다. 폰 다니켄은 문틈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말했다. “맥스, 자네 바쁜가?” 맥스 사일러는 KILA의 총지휘자로 푸른 눈에 옅은 금발, 딱 벌어진 어깨에 작고 다부진 체구를 가진 사나이였다. 일하다 말고 그는 “자네가 올 줄 알았지” 하며 올려다보았다. “간밤에 고생 좀 했다고 들었네.” 폰 다니켄은 사일러에게 구체적인 사항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권 세 개를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피살자의 집에서 발견한 증거들일세.”“특수요원?” 사일러는 여권을 훑어보며 이렇게 물었다. “특수요원이나 밀수꾼, 사기꾼 그 중에 하나겠지.” 사일러는 커버에 금장 장식과 함께 네덜란드의 정식 국가 명칭이 적혀 있는 붉은색 여권을 응시했다. “이건 진짜인가?” “그자는 네덜란드 정부에서 자국민에게 발급하는 C형 허가서를 소지하고 있었어. ISIS가 네덜란드에서 다닌 대학시절까지는 추적해냈지. 18세 이전에 잠입했다고는 보기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네만. 하여튼 자세히 좀 분석해 주게. 이 여권들은 전부 아이덴티게이트에 돌려 더 상세한 자료들이 나오는지 검색해 보고 발급한 기관들과 연락을 취해 보게.” 더 상세한 자료들이란 주민등록증이나 출생증명서 등 개인의 신상정보를 확인해 주는 정부 발행 문서들을 말하는 것이다. 사일러가 몸을 숙여 서류 더미를 가까운 의자 위로 옮겼다. 흘낏 보니 이탈리아 운전면허증, 독일 의료보험증, 영국 출생증명서 등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가짜였다. “줄스 게이, 1962년생, 브뤼셀 출신이라.” 사일러는 벨기에 여권을 펴고 소리 내어 읽었다. 여권 페이지를 죽 넘겨 출입국 도장들을 살펴본 다음 다시 제일 앞장을 펴고 거위 목처럼 생긴 자외선 등 밑으로 가져갔다. 희미한 벨기에 왕궁 마크가 나타났다. “반응 잉크는 괜찮아 보이는 군.” 폰 다니켄이 말했다. “벨기에 신형 여권 마크는 선명하지. 여권에 다섯 가지 위조 방지 장치가 있어. 겉면에 레이저로 뚫은 미세한 구멍, 알버트 2세의 워터마크, 보는 각도에 따라 녹색에서 푸른색으로 색이 바뀌는 벨기에 마크, 그리고 두 개의 마이크로 감지요소까지. 확인이 더 필요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건 진본이네.” “빈 페이지들 말인가?”“빈 페이지들뿐만이 아닐세. 내 말은 공식적으로 발행한 진본이란 뜻이지. 정식 여권 발행 기관에서 발행된 것이 맞아.”“확실해?” 폰 다니켄의 의심병은 그의 직업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벨기에 여권은 위조문서 시장의 명품으로 통하는데, 저렴하면서도 믿을 만하고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1990년 이후 1만 9,000 페이지가 넘는 진본 여권의 빈 용지가 도난당했는데, 벨기에 영사관, 대사관, 그리고 시청이나 외국으로 가는 외교 행랑에서 사라졌다. 이 나라 사람들은 열쇠 잃어버리는 것만큼이나 쉽게 여권을 분실했다. “그야 확인해 보면 되지.” 컴퓨터에 로그인한 다음 사일러는 스위스 경찰이 전 세계에 걸쳐 이백만 건 이상에 달하는 도난당하거나 위조된 서류들을 저장하고 있는 아이덴티게이트 데이터베이스에서 해당 여권번호를 조회했다. “벨기에 사람들은 쉽게 잃어버리는 만큼이나 도난 신고도 철저히 하지.” 사일러가 말했다. “만약 이 여권이 도난당한 것이라면 뭔가 자료가 나올 거야.” 잠시 후 그의 넓적한 얼굴이 실망한 듯 주름이 졌다. “아무 것도 없는데. 벨기에 측 정보로는 여권에 아무 문제가 없어.” “위조 여권이 아니라는 게 확실해?”“그렇다고 봐야겠지. 사진이 여권에 아예 박혀 있잖아. 라머즈가 원래 주인의 사진을 자기 사진으로 바꿔치기 했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전화 좀 써도 되겠나?” “그럼.” 폰 다니켄은 벨기에 연방경찰의 신원증빙과에 전화를 넣었다. “프랭크, 지금 내 책상 위에 자네 나라 여권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간밤에 살해당한 남자의 여권이야. 내 생각엔 진본인 것 같아.” 이렇게 말하며 그는 여권번호와 여권 소지자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진본이야.” 잠시 후 프랭크 빈센트가 말했다. “시스템에 번호가 뜨는데.” “웃기는 군. 여기선 라머즈란 이름의 그 희생자가 네덜란드 국적을 갖고 C급 허가증을 가진 스위스 거주자로 나오는데. 부탁 하나만 하지. 이 줄스 게이라는 남자에 대해 자세히 조사 좀 해주게.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으로 말이야. 이 자가 실존 인물인지 가상 인물인지 좀 알아봐 주게.” “시간이 좀 걸릴 걸. 오늘 중이면 되겠나?” “점심 전이면 더 좋고. 그리고 하나 더 있어. 그 여권이 어디로 발송된 건지도 알려주게.” 폰 다니켄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맥스 사일러가 뉴질랜드 여권을 검사해 보았더니 그것도 검사를 통과했다. 손 댄 흔적도 없고 여권번호도 도난 데이터베이스에 나타나지 않았다. 폰 다니켄이 시계를 보니 뉴질랜드 오클랜드 시간으로는 오후 5시 30분. 대신 파리 소재 대사관에 연락을 취해 보기로 했다. 10시간의 시차 때문에 뉴질랜드는 대부분의 공식적인 요청을 처리할 수 있도록 프랑스 주재 대사관에 보강 인력을 배치해 두고 있었다. 폰 다니켄이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더니 대사관측은 여권이 진본이라고 알려주었다. 뉴질랜드 당국에 의하면 여권 소지자 마이클 캐링턴은 크라이스트처치 빅토리아 레인 24번지에 거주하는 모범 시민이었다. 공식 기록이 깨끗했다. 문제의 여권에 대해 검토해 달라고 요청하자 즉시 조사해 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떻게 생각해?” 전화를 끊고 그가 물었다. 사일러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답했다. “뭐라 말하기가 어렵군. 자네가 맡은 사건의 피살자 사진이 붙어 있는 두 개의 유효한 여권이라.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군. 그렇지 않은가? 게이와 캐링턴은 위장 신분이야. 뒤가 구린 사업가는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자네가 그림자 요원이 연루된 사건을 맡은 것 같군. ‘그림자 요원’이란 자국 정부의 보호 없이 비밀리에 외국 영토에서 활동하는 훈련받은 요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한마디로 적국에 깊숙이 잠입한 위장간첩을 말하는 것이다. 폰 다니켄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7년 전 사건 이후로 그의 책상 위에 이 정도 규모의 사건이 올라온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두 가지가 궁금했다. 라머즈는 누굴 위해 일한 것일까? 그리고 살해당하기 전까지 그가 스위스에서 꾸민 일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8오전 7시. 테일 넘버 N415GB번, 걸프스트림 4호의 터빈 수리가 끝나고 항공기는 스위스 베른공항을 이륙할 준비를 끝마쳤다. 마르커스 폰 다니켄이 숙소 제공을 제안했지만 필립 팔룸보는 기내에 남아 승객용 객실 후미에 있는 카우치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항공기가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하자 팔룸보는 자리에서 일어나 항공기 꼬리 쪽 문을 지나 화물칸으로 갔다. 화물칸은 경사진 천장에 창문이 없는 비좁은 공간으로 한쪽 구석엔 여행용 가방 세 개가 쌓여 있었다. 다리를 접고 앉아 가방들을 밀어내고 바닥의 판넬을 들어 올리자 쇠 손잡이가 나왔다. 손잡이를 확 잡아당기자 매트리스와 안전벨트가 있는 한 평 남짓의 좁은 공간이 드러났다. 그 안엔 흰색 점프슈트를 입고 마른 체구에 올리브 빛깔 피부를 가진 남자가 손발이 수갑에 묶인 채 누워 있었다. 수염은 누군가에 의해 깎여 있고, 두발도 군인 머리처럼 짧았다. 성인용 기저귀 또한 규정에 따라 채워져 있었다. 수감자를 비인격화하는 동시에 무력화하기 위한 조치들이었다. 남자는 어리게 보이고 철태 안경을 끼고 있어 겉모습만 보면 대학생이나 컴퓨터 프로그래머처럼 보였다. 왈리드 가싼. 나이는 31세. 이슬람 지하드, 헤즈볼라, 그리고 자존심 강한 이슬람 광신도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알카에다 조직에도 가담한 적이 있는 내로라하는 테러리스트였다. 팔룸보는 그를 끌어내 승객실로 데리고 가서 자리에 밀어 앉힌 다음 움직이지 못하도록 안전벨트로 꽉 조여 고정시켰다. 그런 다음 가싼의 다친 손가락을 머큐로크롬으로 소독해 주었다. 팔룸보가 손톱 세 개를 뽑아 버렸기 때문이다. “도대체 날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요?” 가싼이 물었다. 팔룸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숙여 남자의 발에 묶여 있던 수갑 장치를 풀어 준 다음 혈액순환이 되도록 발목을 문질러 주었다. 이렇다 할 정보를 얻기도 전에 심부정맥혈전증으로 죽기라도 하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난 미합중국 국민입니다.” 가싼이 반항하듯 대들었다. “내게도 권리가 있습니다. 어디로 날 데려가는 거냐고요? 난 대답을 들을 권리가 있습니다.” 불현듯 특별송환에 관한 격언이 생각났다. CIA에선 누굴 심문하려면 요르단으로 보내고, 고문하려면 시리아로 보내며,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리게 하려면 이집트로 보낸다는 말이 있다. “벌써 알면 재미없잖아, 하지.” “내 이름은 하지가 아니라고요!”“틀린 말은 아니지.” 팔룸보가 협박조로 이렇게 말했다. “왜인 줄 알아? 자네에게 이제 이름 따윈 없기 때문이야. 이제부터 자넨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그러면서 그자의 코앞에다 손가락을 휘둘러 보였다. “이렇게 휙-하고 사라져 버린 거지.” 팔룸보는 비행기가 이륙하자 안전벨트를 맸다. 선실 머리 위 화면에는 비행기의 속도, 외부 온도, 도착지 시간 등과 함께 세계지도 위에 항로가 나타나 있었다. 북쪽으로 비행한 뒤 몇 분 후에 걸프스트림기는 기수를 왼쪽으로 돌려 지중해가 있는 남동쪽으로 향했다. “한번 더 기회를 주겠어.” 팔룸보가 말했다. “지금 자백을 하든 아니면 나중에 하든. 장담하는데 첫 번째 선택이 자네한테 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다 줄 거야.” 가싼은 다갈색 눈동자로 그를 응시하며 대꾸했다. “난 할 말이 없어요.” 팔룸보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번 건도 영 쉽지 않겠는 걸. “자네가 독일에서 구해온 폭발물. 거기서부터 시작해 볼까?” “무슨 애길 하는지 모르겠군요.”“그래,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그는 가싼을 쳐다보며 이 젊은 사내가 저지른 끔찍한 일들과 그가 초래한 죽음들, 그리고 그가 파괴한 가족들을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비행기가 착륙하면 이 자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했다. 앞으로 네 시간 뒤면 왈리드 가싼은 자신이 저지른 짓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9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잠시 만요.” 청바지에 모카신을 신은 조나단은 바스크 풀오버를 걸치며 문 쪽으로 갔다. 호텔 매니저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저희 전 직원을 대신하여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저나 저희 직원들이 대신….”“고맙습니다.” 조나단은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매니저는 고개만 끄덕일 뿐 좀처럼 떠날 생각을 안했다. 대신 그는 재킷에서 누런 서류봉투를 하나 꺼내더니 그에게 건넸다. “사모님께 왔던 편지입니다만.” 조나단은 봉투를 받아 자세히 보기 위해 조명 있는 쪽으로 가져갔다. 편지의 수신인은 ‘엠마 랜섬, 벨뷰호텔, 포스트스트라쎄, 아로사’로 되어 있었다. 주소는 크고 굵직한 글씨로 또박또박 적혀 있고, 한눈에 봐도 남자가 쓴 글씨임을 알 수 있었다. 편지를 뒤집어 봐도 보낸 이의 주소 같은 건 적혀 있지 않았다. “하루 늦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호텔 직원은 말을 이었다. “성 피터-몰니나 근처의 철도 터널 확장 공사 때문에 눈사태가 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랜섬 부인께도 그렇게 말씀을 드렸더니 매우 언짢아하셨습니다. 이 점 사과드립니다.” “내 아내와 이 편지에 대해 말을 나누셨다고요?” “예, 토요일 저녁 식사 전이었습니다.”“그러니까 아내가 이 편지를 기다리고 있었단 말씀이죠?” “사모님께서 선생님의 생일과 관련 있다는 귀띔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게도 특별히 잘 보관해 달라고 당부하셨고요.” 생일이라고? 조나단의 서른여덟 번째 생일인 3월 13일이 다가오려면 아직 한 달이 훨씬 넘게 남았다. “네, 짐작이 가는군요. 고맙습니다.” 그는 문을 닫고 침실로 걸어가며 손에 쥔 편지를 뒤집어 보았다. 엠마 랜섬. 벨뷰 호텔, 포스트스트라쎄, 아로사. 우편물 소인의 잉크 자국이 번져 있었다. 보낸 날짜는 쉽사리 알아볼 수 있었지만 우편을 보낸 지역이 기록되어 있어야 할 부분은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그 첫 글자인 알파벳 A인지 R인지 구분이 안 가는 글씨가 남아 있고, 두 번째 글자는 c 아니면 o, 그것도 아니면 e일거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세 번째 글자는 l 아니면 i 정도로 보였다. 그러다 추측하기를 그만두고 말았다. 다 부질없는 짓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침대에 걸터앉으며 봉투를 뜯으려고 집어 들다 푸른색 급행 우편용 스탬프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 그렇다면 금요일에 부쳐 하루 뒤에 배달되도록 보냈다는 말인데. 봉투를 한 번 더 뒤집어 봤지만 여전히 보내는 이의 주소 같은 건 없었다. 아내를 의심하기 시작한 게 얼마나 됐을까? 6개월? 아니면 일년 전부터? 어쩌면 엠마가 프랑스 출장을 다녀온 후부터였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야. 어쩌면 이미 그 전에 가까워진 사이였을지도 모른다. 진작 눈치 챘어야 했는데, 그러기엔 자기가 너무 바빴던 것 같다. 그가 아내를 미치도록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미치도록’이란 말은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무조건적이고 위험하고, 자기를 모두 포기하는 사랑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엠마를 향한 사랑은 그녀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입 꼬리를 올리며 짓는 표정을 보면 “당신은 아무리 애써도 날 못 이길 걸” 하고 놀리는 것 같았다. 숱 많은 붉은 머리는 제대로 빗는 법이 없었다. 제발 기워 입으라고 아우성치는 듯한 찢어진 청바지. “세상에는 머리를 땋고 멋진 옷을 입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너무 많아, 조나단.” 그녀의 눈빛은 그로 하여금 그녀에게 모든 것을 다 쏟게 만들었다. 그녀는 마치 그를 위해 특별히 창조된 존재 같았다. 그는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았고,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그는 아내를 미치도록 사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눈먼 사랑만 한 건 아니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아내는 자신이 하는 일에 점차 흥미를 잃어갔다. 하루에 14시간씩 하던 일하는 시간이 12시간, 8시간으로 차츰 줄어들었다. 국경 없는 의사회의 지역 담당자인 엠마는 중동지역 구호활동 업무를 총괄하고 있었다. 스텝과 자원봉사자를 채용하고 훈련시키는 업무를 지휘하고, 물품 배송 감독과 현지 관리 접촉하는 일을 맡았으며, 구호활동을 유지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재정을 관리했다. 정말 정신없이 바쁜 직업이라고 표현해도 모자랐다. 힘을 다 소진해 버릴까 염려한 나머지 처음에 조나단은 그녀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도맡았다. 자신을 너무 혹사시켰기 때문이다. 마치 내면에 있는 밝은 불꽃을 모조리 태워 버리려고 작심한 사람 같았다. 휴식이 필요한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다른 조짐들이 있었다. 두통을 호소하는가 하면, 홀로 산책하러 나가고, 침묵하는 시간도 점점 더 길어졌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어져 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모든 것이 파리 출장을 다녀온 다음부터 시작되었다. 조나단은 두 손가락으로 봉투를 잡고 앞뒤로 뒤집어 보았다. 무게감이 전혀 없었다. 고작해야 종이 한 장 정도 들어 있을 것 같았다. 아무 것도 기재되지 않은 반송지 주소 기재란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곳 스위스에서는 은행 정보 관련 기밀을 누설하거나 린트 밀크 초콜릿 구매 영수증을 가짜로 만드는 것은 범죄에 해당되지만, 봉투에 발신자의 이름을 기입하지 않는다고 국가 반역죄로 처벌받지는 않는다. 국가 반역자가 아니라면 정체가 무엇인가?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딱딱한 영국식 영어가 들려왔다. “그리니치 민 타임 12시, BBC 방송국 월드 서비스입니다. 보도에 의하면….” 그러나 조나단의 머릿속에선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봉투를 열어 봐.” 목소리는 이렇게 재촉했다. “당장 열어서 읽어 봐.” 읽어 보는 게 그렇게 큰일은 아니잖아…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절실한 것도 아니었다. 엠마는 죽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녀에 대한 추억뿐인데, 그걸 굳이 망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는 편지를 얼굴에 좀 더 가까이 가져다 대며,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한 도시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바로 파리였다…파리의 문화와 크로와상, 그리고 샤갈 작품전에 푹 빠지고 싶다며 엠마가 일주일을 다녀왔던 곳.파리…그가 엄청나게 화를 내며 남긴 음성 메시지들에도 불구하고 엠마는 그곳에서 이틀 낮 이틀 밤 동안 사라졌고, 그런 다음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나타났다. 파리…. 조나단은 사각 속옷 하나만 걸친 채 텐트 안 간이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새벽 세 시인데도 텐트 안은 여전히 열기로 후끈거렸다. 중동에서도 유별나게 더운 여름이 계속되고 있었다. 몇 달 동안 베카 밸리에서 일하고 생활하면서 그는 땀을 흘리며 자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옆 침대는 비어 있었다. 엠마는 일주일간 유럽을 방문하기 위해 떠나고 없었다. 제네바의 본부에서 나흘간 머문 뒤 파리로 가서 사흘 동안 제일 친한 친구인 시몬느와 만나 빛의 도시를 정신없이 구경하는 게 그녀의 일정이었다. 쥬드폼미술관에서 오후를 보내고, 저녁에는 베르사유에서 ‘빛과 소리’를 즐길 것이라고 했다. 엠마는 활기에 넘쳐 자신들의 여행 일정을 분 단위로 쪼개고 있을 것이다. 조나단은 자동차 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차량이 쳐들어오는 소리가 밤하늘을 가득 울리고 있었다. 베개에서 머리를 들어 올리는데 한 발의 총성이 어둠을 찢어놓았다. 조나단은 재빨리 침대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팔레스타인 청년 라쉬드가 병원 문 앞에 서서 두 팔을 뻗은 채 입구를 막고 있고, 진흙투성이 도요타 픽업 트럭 두 대가 근처에 세워져 있었다. 차량 스피커를 통해 A단조의 멜로디가 슬렛지해머 비트에 맞춰 시끄럽게 울려나왔다. 무장한 민병대 몇 명이 그를 에워싸고 자동소총 총구로 찌르면서 문을 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조나단은 그들 가운데로 뛰어들며 어설픈 아랍어로 말했다. “원하는 게 무엇이요?” “당신이 책임자인가?” 리더로 보이는 누런 얼굴빛에 성긴 턱수염, 그리고 고양이처럼 예리한 눈빛을 가진 이십대 청년이 말했다. “당신이 의사인가?”“내가 의사요.” 조나단이 대답했다. “우리는 약이 필요하다. 이 아이에게 물러서라고 말해라.”“절대로 안 됩니다.” 라쉬드가 소리쳤다. 아이는 아주 독립심이 강한 열다섯 살 소년으로 조나단과 엠마가 이곳에 왔을 때부터 성실히 그들 곁을 지켰다. 그에게 있어서 조나단은 우상이자 스승이었고, 수호성인이자 가장 신성한 존재였다. 라쉬드는 수많은 친척들을 돌봐 주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의학을 공부하고 싶어했다. “제발 진정해 주시오.” 조나단은 신경이 곤두선 괴한들을 진정시키려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도와드리지요. 누가 아프십니까? 여러분 가운데 누가 다친 겁니까?”“내 아버지요.” 리더가 말했다. “심장이 안 좋아요. 약이 필요해요.”“이리로 모시고 오세요.” 조나단이 말했다. “기꺼이 치료해 드리지요.” 리더 소년의 두 눈이 이글거리고, 미소는 꿈속을 헤매는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술을 마셨나? 아니면 마약? 어떤 종류지? 라키? 하쉬? 메스? “그럴 시간이 없어.”“메자-알-샤리프 병원으로 가는 게 좋을 겁니다. 당신 아버지가 심장병을 앓고 있다면 베이루트로 모셔가도록 주선해 줄 수 있어요.”하지만 베이루트는 차로 여덟 시간이 걸리고, 메지-알-샤리프로 가는 길은 홍수로 길이 끊어져 통행이 불가능했다.“비켜.” 리더가 이렇게 소리치며 라쉬드를 밀쳐내자 라쉬드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조나단이 라쉬드에게 달려들지 말라고 말리기도 전에 리더는 라쉬드의 얼굴에다 대고 총을 한 방 발사했다. “우리 아버지는 심장병 때문에 니트로글리세린이 필요하단 말이야.” 리더는 쓰러진 라쉬드의 몸을 타넘으며 소리쳤다. 조나단은 쓰러진 라쉬드를 보고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았다. 조나단은 그들을 조제실로 안내했다. 무리는 순식간에 달려들어 모르핀과 비코딘, 코데인이 놓인 선반을 눈 깜짝할 사이에 깨끗이 비웠다. 불과 몇 분 만에 조제실 전체가 텅 비었다. 마무리도 신속하게 했다. 그들은 조나단에게 예언자의 가호를 빌어 준 다음 픽업 트럭에 오르더니 곧바로 자리를 떴다. 조나단은 곧바로 전화기를 들고 파리로 전화를 걸었다. 파리에 가 있는 엠마더러 제네바로 날아가 국경 없는 의사회 본부로 찾아가라고 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본부에 미리 전화를 걸어 추가 자금 지원을 요청해 놓은 다음 엠마가 그걸 가지고 와야 병원 의약품을 다시 채워놓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레바논은 새벽 세 시 반이고 파리는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트로와꼬론느 호텔로 전화를 했지만 아내는 받지 않았다. 핸드폰도 불통이었다. 호텔로 다시 전화를 걸어 아내가 묵는 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그래도 엠마는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다. 그날 밤, 그 다음날 아침에도. 심지어 조나단이 베이루트로 직접 운전해 가서 자기 구좌에 남은 돈을 모두 긁어 암시장에서 필요한 약품을 구입하고 난 그날 오후까지도 아내의 전화는 없었다. 아내가 사라진 것이었다. 모든 인간의 인내심에는 한계가 있다. 슬프게도 그는 믿음이라는 것이 결코 닳아 없어지지 않는 덕목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음날 그는 오전 6시에 호텔로 전화를 걸어 매니저를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아내가 묵고 있는 방에 메모를 남긴 게 확실합니까?” 따지듯이 물었다. “예, 아내께서 묵는 객실로 메시지를 전달해 드렸습니다. 확실합니다. 제가 직접 방으로 전달했습니다.”“혹시 지금 내 아내가 방에 있는지 확인해 주실 수 있겠는지요?”“아, 물론이지요. 전화를 제 핸드폰으로 돌리겠습니다. 방에 계시면 바로 통화하실 수 있도록 바꿔드리겠습니다.”조나단은 전화기 너머로 호텔 매니저를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구식 엘리베이터 문 닫히는 소리, 고급 신사화가 카펫이 깔린 복도를 느릿느릿 걷는 소리, 이어서 문을 강하게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십니까, 마담. 호텔 지배인 앙리 고티에르입니다. 별 일 없으신가 해서 들렀습니다.”아무 대답이 없었다. 잠간 시간이 흐른 다음 고티에르가 객실로 들어갔다. “랜섬씨?” 세련된 프랑스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모들이 여기에 그대로 있습니다.”“그게 무슨 소리죠?”“바닥에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개봉되지 않은 채 그대로입니다. 아내께선 객실에서 지내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침대를 사용하신 흔적이 없습니다. 가방이나 소지품도 보이지 않습니다.” 고티에르는 잠시 말을 멈추고 어깨를 으쓱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객실 상태가 고객께서 입실하시기 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 * *일단 열어 보자. 조나단은 한 손가락으로 봉투의 윗부분을 찢어 열었다. 종이 한 장만 달랑 들어 있었다. 아무런 내용도 적혀 있지 않은 빈 종이였다. 보내는 사람 이름도 없고 받는 사람 이름도 없었다. 아무런 표시나 흔적도 없었다. 봉투를 뒤집어 위아래로 흔들어 보았다. 카드보드지 두 장이 손바닥 위로 떨어졌다. 두 장 모두 정확히 같은 크기이고, 종이의 한쪽 모퉁이에는 절취된 흔적이 있었다. 카드보드지의 정중앙에는 빨간 잉크로 찍힌 여섯 자리 숫자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무슨 영수증 같아 보였다. 코트를 맞기면 주는 보관증 비슷했다. 오른쪽 하단에 아주 작은 글씨로 뭔가 적혀 있었다. SBB. 스위스 국철 수하물 보관증이었다. 10마르커스 폰 다니켄은 열두 시간 만에 다시 취리히로 돌아왔다. 회사 입구 간판에는 휘황찬란한 블루 색상의 글씨로 ‘로보티카 AG’라고 적혀 있었다. 그가 본 자료에 의하면 1994년에 테오 라머즈가 이 회사를 설립하고 그때부터 회사의 소유주 겸 최고경영자로 있었다. 회사의 생산활동 내역은 ‘기계 부품’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좀 사무적이고 고지식해 보이는 여성이 사열 준비를 마치고 지휘관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부동자세를 하고 리셉션에서 대기 중이었다. “미카엘라 멘즈입니다.” 큰 걸음으로 다가오며 그녀가 말을 건넸다. 한쪽으로 가르마를 탄 짧은 갈색머리에 수수한 투피스 정장 차림이었다. 명함에는 기계공학 박사에다 박사과정을 우등으로 졸업했다는 이력이 적혀 있었다. 폰 다니켄은 노련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내민 명함에 화답하듯 자신의 신분증을 내밀어 보였다. 누구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을 태도였다. “우리 모두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사무실로 안내하며 멘즈는 이렇게 말을 꺼냈다. “라머즈씨에게 원한을 가질 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정말 좋은 분이셨거든요.” “그럴 테지요.” 폰 다니켄이 말했다. “사실 내가 이곳을 찾아온 것도 그래서입니다. 우리도 회사 직원들 못지않게 살인범을 체포하고 싶습니다. 어떤 정보든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멘즈의 사무실은 작지만 아담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가족이나 연인 혹은 친구의 사진을 넣은 액자는 없었다. 그녀는 일과 결혼한 일벌레처럼 보였고, 매우 심란한 상태에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죽은 라머즈를 걱정하는 것은 아닐 테고, 앞으로 회사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그가 죽은 지금 회사 경영을 누가 대신 맡을지 같은 것을 놓고 고민 중일 것이다. “회사 내 사람이 범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녀는 슬픔을 가득 담은 말투로 물었다. “해외에 나가 있는 사람일까요?” “지금으로선 드릴 말이 없습니다.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는 게 경찰 내부 규정입니다. 먼저 회사에 관련된 질문부터 해도 되겠습니까? 정확히 만드는 물품이 무엇입니까?” 직책이 이사인 그녀는 책상 쪽으로 의자를 바싹 당겨 앉으며 대답했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입니다. 지상, 수중, 이동식 단말기 포지셔닝이요.” 폰 다니켄이 이해가 안 간다는 눈빛을 보이자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항공기, 보트, 차량의 정확한 위치를 인식해 내는 장비를 만드는 것입니다.” “GPS 같은 것입니까?” 얼굴을 찡그리는 것으로 보아 그것과는 다른 모양이었다. “우리 제품은 위성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최근 ‘센서 융합’이라는 기술을 활용해서 새로운 지형 내비게이션 시스템 특허를 취득했습니다. 관성 센서 내비게이션 시스템과 디지털 지도, 그리고 전파 탐지 고도계의 측정값을 결합하는 것입니다. 항공기의 경로를 따라 지형의 높낮이를 측정하고, 측정값을 디지털 지형 지도와 비교함으로써 항공기의 위치를 오차범위 몇 밀리미터 이내로 정확하게 잡아낼 수 있습니다.” “구매자는 누구입니까?” “저희는 여러 분야의 고객층을 모시고 있습니다. 보잉, 제너럴 일렉트릭, 에어버스, 그 외에도 여러 회사들이 있죠.” 그녀의 말에 놀란 듯 폰 다니켄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렇다면 내가 이용하는 항공기가 산속으로 처박히지 않는 것에 대해 감사를 드려야하겠군요.” “저희 때문만은 아닐 테지만 굳이 말하자면 우리 공로도 크다고 할 수 있지요.”그는 무슨 비밀 이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몸을 숙였다. “군사기술 부문에도 쓰였을 것이라고 생각되는군요. 군수산업 쪽 고객도 확보하고 있으신가요? 전투용 항공기 제조업자라든가. 레이저 유도 무기라든가요. 그런 종류의 무기들 있지 않습니까.” “전혀요.” “하지만 언급하신 회사들 중에도 대규모 방위산업체가 있지 않습니까, 안 그런가요?” “그렇긴 하죠. 하지만 그 분야는 저희 담당이 아닙니다. 군사용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제작하는 회사는 따로 있습니다.” 폰 다니켄의 귀에는 그 대답이 굉장히 사무적으로만 들렸다. 라머즈는 사담 후세인의 의뢰로 제작했던 슈퍼건을 비롯하여 대형 무기를 제작하는 데 연루되어 요주의 인물 명부에 올라 있었던 사람이 아닌가. “라머즈씨가 전에 무기 제작 일에 관여한 사실을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이렇게 떠보았다. “정말 비상한 분이셨지요.” 멘즈가 대답했다. “저하고 미처 나누지 않으셨던 관심 분야도 참 많았을 거라 짐작해요. 제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 회사는 어떤 종류이건 무기 쪽과는 연관된 적이 절대로 없다는 점입니다.” 그녀의 눈썹이 가운데로 몰렸다. “근데 왜죠? 그 일이 그분의 죽음과 무슨 상관이라도 있단 말씀이세요?” “지금으로선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멘즈는 고개를 돌렸고, 그는 그녀가 방금 나눈 대화 내용을 따져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표정이 부드러워지더니 얼굴을 가리고 숨죽여 훌쩍이며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테오씨의 죽음이 너무 가슴 아파서요.” 폰 다니켄은 대화 내용을 노트에 급히 적어 내려갔다. 자신이 명탐정 메그레 경감은 아니지만 미카엘라 멘즈가 사실을 말하고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았다. 설혹 라머즈가 바람직하지 않은 어떤 일에 연루되어 있었다 해도 그녀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여자가 진정하길 기다렸다가 다시 물었다. “라머즈씨가 출장을 자주 다닌 편이었나요?” 멘즈가 고개를 들었다. “출장이요? 어머나! 당연하죠.” 그녀는 눈을 훔치며 말했다. “쉬지 않고 여행을 다니셨죠. 설비점검, 계약체결, 고객관리 등등 할 일이 너무 많으셨죠.” “라머즈씨가 주로 다니던 나라는요?”“우리가 하는 계약의 90퍼센트는 유럽 내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뒤셀도르프, 파리, 밀라노, 런던을 수없이 왕래하셨어요. 산업 중심 허브 도시들이지요.” “중동에 간 적은 없었어요? 시리아나 두바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나 이집트와는 거래가 없었나요?” “전혀 없습니다.” “출장을 위한 사전 예약 업무는 누가 했나요?” “직접 하셨죠. 제가 생각하기에는.” “라머즈씨가 비서를 통하지 않고 일을 처리했단 말씀이신가요? 항공편, 호텔, 렌탈 차량 등등 출장 전에 준비할 일들이 많은데요.” “말을 해도 듣지 않으셨지요. 그분은 뭐든 직접 하는 스타일이셨어요. 여행을 가실 경우 인터넷을 통해 직접 모든 예약을 하셨어요.” 폰 다니켄은 노트 패드에 그녀가 말한 정보를 모두 받아 적었다. 무슨 일이든 직접 하는 스타일이어서 그렇게 했다고는 절대 믿지 않았다. 그는 비밀이 많은 사람이었다. 줄스 게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다른 가명으로 항공권 예약을 할 때 누군가 어깨너머로 쳐다보는 걸 원치 않았을 것이다. “멘즈 박사님.”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그가 말했다. “그분의 사무실을 좀 봐도 되겠습니까? 라머즈씨에 대해 아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만.”“그러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실 폰 다니켄은 이미 그의 업무 권한을 넘어서 있었다. 영장을 발부받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법률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그는 그곳에서 기웃거릴 권한이 없었다. “살인범을 잡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것을 다 해보고 싶습니다만.”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도 같은 생각이시죠?” 미카엘라 멘즈는 자리에서 일어나 따라오라며 신호를 보냈다. 라머즈의 사무실은 바로 옆방이었다. 사무실 크기는 멘즈의 방과 같았고 사무용 가구도 같았다. 캐비닛 위에 진열되어 있는 아주 흥미로운 물체가 폰 다니켄의 시야에 들어왔다. 높이 5센티미터에 투명한 플라스틱 재질로 만든 물건이었는데 V자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박사님 회사에서 만든 제품인가요?” “그건 MAVmicro-airborne vehicle라는 것으로 초소형 비행체입니다.” 멘즈박사가 대답했다. “좀 봐도 되겠습니까?” 그는 MAV를 가리키며 이렇게 물었고, 멘즈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것을 집어 들었다. 무게는 1킬로그램 남짓 되었다. 양 날개 부위가 매우 단단하면서도 유연성이 뛰어나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날 수 있나요?” “당연하죠.” 그녀는 자존심 상한다는 듯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대답했다. “비행범위는 50킬로미터, 최대시속도 400킬로미터나 됩니다.” “그럴 리가요, 정말입니까!” 폰 다니켄은 목청을 키우며 순진한 시골 경찰관 행세를 성공적으로 해보였다. “라머즈씨가 이걸 여기서 직접 만드셨단 말입니까?” 멘즈는 고개를 끄덕여 시인해 보였다. “저희 연구개발실에서 그분이 직접이요. 이제껏 만든 것들 중 가장 작은 제품이죠. 그 사실에 꽤나 만족해하셨어요.” 폰 다니켄은 그녀가 내뱉는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암기했다. 비행거리 50킬로미터. 속도 시속 400킬로미터. 그의 손으로 직접 만들었고…지금까지 제작한 것들 중에서 가장 소형. 그건 이런 종류의 비행체가 더 있을 거란 소리였다. 그는 그 희한한 비행 물체를 좀 더 관찰했다. 오차범위가 불과 몇 센티미터에 지나지 않는 고성능 내비게이션 시스템으로 유도되는 것이 틀림없었다. “회사 제품에 포함된 것인가요? 생산라인에 포함시킬 계획이십니까? 장난감 시장에 진출시킨다든지 말입니다?” 예상했던 대로 그의 말에 멘즈의 태도가 싸늘하게 바뀌었다. 그녀는 앞으로 나와 초소형 비행체를 빼앗아 들며 이렇게 쏘아붙였다. “MAV는 장난감이 아닙니다. 이건 현존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가벼운 초경량 비행체란 말입니다. 잘 모르시나 본데 참고로 이건 저희 VIP 고객님을 위해 제작한 제품이랍니다.” “그게 누군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건 기밀사항이라서 곤란합니다. 하지만 군 계통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것만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사실은 그 반대에 가깝죠. 제가 말씀 드린다면 누군지 금방 아실 겁니다. 최고 수준의 고객으로부터 주문을 받았으니 우리로서는 영광이죠.” “그 고객이 누구인지에 대해 알려주신다면 매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멘즈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정보가 살인범을 찾는 데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건지 저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군요.” 폰 다니켄은 점잖게 물러섰다. 시간을 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한 다음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를 달라는 말을 했다. 차 있는 곳으로 돌아가면서 그는 로봇에 대한 생각은 더 이상 하고 있지 않았다. 머릿속은 MAV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미카엘라 멘즈의 말이 옳았다. 그것은 장난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쁘장하게 위장해놓은 무기였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