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1일 토요일

내 마음은 호수 [박경리]~

내 마음은 호수 [박경리]선악의 기준을 넘어선, 윤리를 넘어선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있는 진짜 사랑 1955년 단편 [계산]으로 문단에 나온 박경리는 1957년 [애가]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장편 창작의 길로 들어선다. 이후 1959년 현대문학에 연재한 [표류도]는 문단과 독자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며 ‘내성문학상’을 수상한다. [내 마음은 호수]는 [표류도] 다음에 발표한 박경리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이 작품은 1960년 4월 6일에서 12월 31일까지 [조선일보]에 총 269회 연재되었다. 특이한 사실은 [내 마음은 호수]와 함께 지방 신문과 여성 월간지에 [은하]([대구일보],1960.4.2-5.26)와 [성녀와 마녀]([여원],1960.4-1962.3)가 동시에 연재되었다는 점이다. 세 개의 지면에 동시에 작품을 연재하는 상황이 연출된 셈인데, 이러한 글쓰기의 과정은 작가의 생활고와 관련한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작가 박경리는 동시다발적인 창작과정을 통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가족들의 얼굴에 떠도는 불안의 그림자'도 지울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박경리는 그러한 상황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게적지근한 안도'에 따른 '자기혐오'를 느끼며, '세속적인 성공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겠는가, 내 문학하고 무슨 상관이겠는가? 내 인생하고 무슨 상관이겠는가'라고 자문하기도 하였다.[내 마음은 호수]와 함께 비슷한 시기에 연재를 시작한 [은하]와 [성녀와 마녀] 이 세 작품은 모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낭만적 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은하]의 경우는 애정이 비극적으로 종결되던 이전 소설과 달리 여성이 기혼자임에도 불구하고 진실한 사랑을 추구하여 적극적인 애정 실현의 가능성을 시사해주는 작품이다. [성녀와 마녀]는 여성을 남성중심적 사고 혹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이분법적으로 평가하고 타자화하는 당시 사회를 비판한 작품으로 평가할 만하다.[내 마음은 호수] 역시 기혼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여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그 사랑을 실현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주인공 유혜련은 소설가이다. 여성 소설가가 등장하는 박경리의 또 다른 소설 [영원한 반려]나 [겨울비]와 비교해 볼 때 [내 마음은 호수]는 소설가인 주인공의 문학관이나 창작 과정 등은 소략되어 있다. 실제로 작품 중반 이후부터는 문학과 관련한 언급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며, 이영설과 유혜련, 그리고 송병림을 중심으로 한 얽히고설킨 관계망이 주된 서사를 이룬다.흘러가지 않는 호수 같은진정한 사랑[내 마음은 호수]는 소설가인 혜련과 음악가인 영설의 예술적 성취 과정이나 예술가로서의 갈등보다 그들의 사랑이 중심서사로 자리 잡고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은 혜련의 남편 명구에 의해 깨어졌고, 명구가 실종된 상태에서 영설의 구애를 다시 받아들이기까지 우여곡절을 겪는다. 무엇보다 혜련의 마음을 열게 한 것은 죽음에 대한 예감,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시간이다.혜련이 앓고 있던 지병이 악화되고 영설과 화해를 이룬 후부터 작품에서 이 두 사람의 비중은 약해진다. 그리고 서사의 중심은 혜련의 딸 진수를 사랑하는 송병림이라는 20대 청년으로 옮겨간다. 송병림은 25세의 한석중의 외사촌 동생으로 잘 생긴 얼굴에 '음향 좋은 목소리'를 가진 매력적인 인물이다. 현재는 문리대 수학과를 휴학 중이며, 나중에 경제과로 전과를 한다. 송병림은 작품 속 등장인물 중 가장 적극적으로 당시의 시대상황과 긴밀하게 접속되어 있는 인물이다.송병림은 6·25 전쟁 발발 후 의용군으로 출병하였으나 회의를 느끼고 도주하여 미군에 투신하였다. 형은 월북하였으며, 어머니는 전쟁 중에 폭사하였다. 휴전 후에는 서울로 돌아와 대학에 복학하여 소모임 활동을 하다가 불순세력으로 몰려 고문을 당하기도 한다. 송병림이 끌려가는 상황의 긴장과 그가 고문을 당하며 겪는 고통과 갈등, 그리고 무고한 사람을 좌익 세력으로 몰아 목숨을 위협하고 반정부적인 인사를 좌익세력으로 조작하려는 정부기관의 행태가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송병림은 '절망은 절망대로 표출'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며 창작을 그만두려는 혜련을 만류하는, 유일하게 유혜련의 작품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인물이기도 하다.[내 마음은 호수]는 송병림을 통해 미약하나마 작가의 정치적인 관점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박경리는 의도적으로 송병림을 부각시키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내 마음은 호수] 연재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4.19 혁명이 일어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듯하다. 4.19의 경험은 청년들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였고 그것은 [내 마음은 호수]의 송병림을 형상화하는 데에 애정을 쏟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송병림을 둘러싼 이야기의 핵심 역시 ‘혁명’이 아니라 ‘사랑’이다. 그 사랑은 작품의 제목에 걸맞은 낭만적인 사랑이라기보다는 불륜과 금기, 근친상간과 자살 미수 등이 어우러진 사랑이다. 마음의 척도는 풍습이나 제도가 아닌 오직 사랑사실 작품 속에서 [내 마음은 호수]라는 제목에 어울릴 만큼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사랑은 찾아보기 힘들다. ‘호수’는 고요하고, 평화로우며, 아늑하고 안정적이다. 그것이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호수’에 대한 이미지일 터이다. 하지만 혜련의 사랑은 호수라기보다는 정체되어 있는 빠져 나올 수 없는 늪과 같다. 영설의 강한 집착과 격정적인 사랑은 예측하기 힘든 태풍과 닮았다. 무모하고도 일방적인 명희의 사랑도 호수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내 마음은 호수’라는 타이틀을 선택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집착 없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는 노릇이고 사랑이란 언제나 무모하기 마련이지만 작가는 결국 사랑은 호수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아무런 아픔도 갈등도 욕망도 없는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던진 돌멩이에 파문이 일고 출렁이기는 하지만 호수는 이내 다시 평화롭게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호수의 바닥에는 시간의 나이테를 새긴 곡절 많은 돌멩이들이 쌓여 있겠지만, 호수는 그 모두를 품고 그 자리에 있다. 강물은 흘러가기 마련이고 바다는 시시각각 변화하지만 호수는 언제나 그 자리에 그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위태로울 수밖에 없지만 작가는 그렇다고 그러한 사랑을 비난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호수처럼 그 모두를 껴안을 수 있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누가 뭐래도 박경리의 대표작은 [토지]이다. [토지]에서는 서로 신분이 다른 서희와 길상이 결혼을 한다. 용이는 본처가 죽자 임이네 사이에서 아들을 얻고 기생의 딸인 월선과 가슴 아픈 사랑과 이별을 한다. 윤씨부인을 겁탈하는 동학 장수 김개주, 그 사이에 출생한 구천이는 형의 아내를 사랑하여 형수인 별당아씨를 데리고 야반도주를 한다. 이상현은 기생이 된 봉순에게서 딸 양현을 낳는다. 그리고 의남매처럼 지내던 양현을 사랑하는 윤국이, 식민 치하에서 벌어지는 일본인 오가타와 유인실의 사랑....... [내 마음은 호수]에서 보여주는 사랑은 선악의 기준을 넘어선 통상의 윤리 너머에 있다. 그러한 사랑은 비단 이 작품뿐 아니라 박경리의 작품들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영설의 말은 모두가 다 생각 밖의 것이었다. 영설은 자기 앞에 미안하게 고개를 숙일 것을 믿었다. 그리고 버림당한 여자가 비참하게 그의 앞에 섰을 것을 생각하고 몸을 떨었던 것이다. 생명이 있는 한에 있어서 그의 앞에 나타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그러나 그는 영설을 찾아가고야 말았다. 무서운 패배와 굴욕, 그러나 혜련은 진수를 위하여 그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들의 접촉을 막지 않으면 안 될 불가피한 사정이 개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설은 뭐라고 말했던가. 그는 실로 해괴망측하게도 혜련의 소유 권리를 주장했던 것이다.(/ p.103)“전쟁은 내 성격을 좀 강인하게 했구, 맹목적인 생명의 존재를 강요했었다. 그러나 목숨을 부지한 대신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 같다. 잃은 것, 그 많이 잃은 것 중에서 우린 노래를 들 수 있다. 그 노래를 낭만이나 감상, 혹은 눈물 같은 것으로 해석해도 좋구, 인간이나 자연에 가는 애정이라 봐도 좋을 거야. 아까도 명희하구 얘기했지만 존재와 사색 그 어느 것이 선행하느냐의 문제는 여전히 혼돈 속에 있는 일이구, 또 거기에서 말하는 사색이라는 것도 겉치레의 낭만이나 눈물, 애정 같은 일시적 기만이 아닌 보다 본질적인 것이겠지. 존재를 뛰어넘으려는 사색, 사색을 뛰어넘으려는 존재, 그것을 증언하려구 했겠지. 그러나 사람이란 기만 속에 사는 것이 더 용이하구 거짓된 진실을 진실이라 믿구, 낭만하는 생활이 아름답게 보이는 거지. 그러나 우리는 전쟁 속에서 그 기만을 박탈당하구 말았다. 우리는 피비린내 나는 진실의 광장廣場으로 끌려 나왔다. 그곳에는 무수한 생명들이, 그리구 죽음이 와글거리구 있었다. 그것이 진실이었더란 말이야. 아무 의의도 없는, 마치 태양 아래 뻗어진 지렁이와 같은 진실이었더란 말이야. 하긴 얼마간의 세월이 흐르구 시간이라는 베일이 가려지면 이러한 진실은 서사시가 될 것이요, 하나의 비극으로 윤색될 테지, 그러나 이 서사시에 주어질 주제는 뭐냐 말이다. 이 비극에 주어질 영광의 아름다움을 어디서 끌구 온단 말이냐. 동족상잔, 외세를 서로 등에 업구 누구에게 총을 겨누느냐 말이다. 산산 골골의 하늘밖에 원망할 줄 모르는 어진 백성들은 죽음의 대열로 채찍질 당하구 아녀자들의 썩는 시체는 까마귀 밥이 되구 독재자들의 성벽은 황금으로 높아지기만 한다!”(/ p.147)얼마 후 혜련은 서울에 내렸다. 시가는 죽음의 도시처럼 조용했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탓인지 가로는 온통 빙판이었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살을 엘 듯이 차가왔다. 멀리서 은은한 포격 소리가 황량한 공기를 흔들었다.서울은 거의 무인지경이었다. 간혹 만나는 사람이 있어도 군복 차림을 한 젊은이들뿐이다. 거리마다 부서져 흐트러진 벽돌 조각, 앙상하게 벽만 남은 고층 건물, 어디를 둘러보아도 살벌한 폐허요, 포격과 총탄의 자국이 처절한 격전을 연상시킬 뿐이다.일진의 바람이 혜련의 까만 머플러를 휘날렸다. 푸른 하늘과 열도를 느낄 수 없는 태양의 광선과 광물성으로 뒤덮인 허허한 벌판을 한 마리의 갑충처럼 걸어가는 혜련이었다.(/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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