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1일 토요일

거울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롤]~

거울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롤]원서의 제목(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을 보다 정확히 번역하면 [거울을 통하여 앨리스가 거기서 발견한 것]이 적절하나 일반인에게 많이 통용되고 있는 책제목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따랐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읽었을 때 원어민들은 삼촌이나 이모가 조카에게 읽어주는 느낌을 갖는다고 한다. 이번에는 그 느낌을 살려서 될 수 있으면 읽어주는 느낌을 살려 번역했다. 초등학교 초년생 정도의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 그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잃지 말아야할 교훈, 혹은 진실이 있다면 무엇일까. 캐럴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서시에서 지은이는 [밖에는, 서리, 앞을 가리는 눈,/ 폭풍의 변덕스런 광기 뿐-/ 안에는, 붉게 타오르는 벽난로의 빛,/ 기쁨에 찬 어린 시절의 보금자리./ 마법의 말이 그대를 단단히 붙잡아 둘 테니,/ 미친 듯한 바람 소리는 신경을 안 쓰게 되리.]라고 말한다. 이 말에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그러나 어른은 '잠들 시간이 가까워져 초조해하는, 우리는 나이 든 아이들일 뿐'인 어른이다 - 이 이야기를 가슴속에 깊이 간직하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듬뿍 묻어난다. 캐럴이 단지 아이가 즐기라고만 이 작품을 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하는 대목이다. 무엇을 가슴속에 간직하기를 바랐을까? 우리는 작품을 읽고 해석하고, 작품에 나오는 문장으로 추측할 뿐이다.줄거리작품의 큰 흐름은 앨리스가 고양이와 놀다가 거울 속으로(1장) 들어 가, 살아 있는 꽃밭(2장)에서 꽃들과 대화를 하고, 곤충들이(3장) 어떻게 이름이 붙여지는지를 보고, 쌍둥이 형제 트위들덤과 트위들디를(4장) 만난다.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여왕을 만나는데 여왕이 양이(5장) 된다. 그리곤 그 유명한 달걀모양의 인형인 험프트 덤프티를(6장) 만난다. 사자와 유니콘이(7장) 왕관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붉은 기사와 흰 기사가 싸우는 것을 보았고(8장), 마침내 졸에서 출발한 앨리스가 여왕이(9장) 된다. 붉은 여왕을 잡아서 흔드는데(10장) 여왕이 원래 고양이였고(11장), 자기가 경험한 그 모든 것을 누가 꿈꾼 건지 질문한다.(12장)처음부터 쉽게 이해하기 힘든 게 여기서 '거울'이 무엇을 의미 하는가이다. 아마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우리의 인식의 근간을 형성하는 곳이 아니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의 큰 줄거리는 졸인 앨리스가 여왕이 된다는 것이다. 여왕이 된다는 것이 권력이 있는 사람이나 재물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꿈꿀 수 있는 사람이라는 데 있다. 여기서의 꿈은 아마 우리가 일상적으로 꿈꾼다고 할 때의 의미와 사물과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주체의 힘도 포함된 것 같다. 그러기에 8장에서 앨리스는 붉은 왕의 꿈속에 있는 앨리스가 되기를 당연히 강하게 거부한다. ['그럼 결국 내가 꿈을 꾼 게 아닌데', 앨리스는 혼잣말을 했어. '만약- 만약에 우리 모두가 똑같은 꿈의 한부분이 아니라면 말이야. 단지 그게 붉은 왕의 꿈이 아니라, 내 꿈이었으면 난 정말 좋겠어! 다른 사람의 꿈속으로는 정말 들어가고 싶진 않거든']이라며 자기가 이 모든 것을 꿈꾸는 주체이길 원한다. 이 주체인 나는 졸에서 여왕이 되는데 각 장마다 질문하고 있는 물음에 답해야한다. 그래야만 9장에 이르러서 스스로 인식의 주체인 여왕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식의 주체인 내가 혹은 앨리스가 움직이는 가상의 공간은 체스 판이다. 체스에서는 졸이 살아서 마지막까지 가면 여왕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라도 졸인 인생에서 여왕인 인생을 살고 싶지 않겠는가? 체스 판은 혹은 주체의 공간은 주체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끼친다. 그러기에 이 세계에서는 주체의 위치 혹은 자세가 끊임없이 흔들리는 것이다. 캐럴은 이것을 아이에게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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